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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못 본 대한전선

한형주 기자공개 2012-12-10 12:37:41

이 기사는 2012년 12월 10일 12: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7일 아침, 황당한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대한전선이 대규모(3476억 원) 유상증자를 성공리에 마쳤다는 내용이었다. 사측은 자료를 통해 "3일부터 진행한 유증 청약이 6일부로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잘못된 내용이었다. 유증 구주주 청약은 3일부터 시작됐지만, 실권주 일반공모 청약은 7일까지였다. 일반 청약은 6일부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그 때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이틀 간의 청약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에 보도자료가 나온 것이다.

일반공모에선 마지막 날 청약 주문이 몰리거나 혹은 철회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들의 투자심리가 막판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향이 짙기 때문. 따라서 오후 4시 청약이 마감되기 전까진 누구도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청약 마지막 날 주가라도 올려보겠다는 포석이었을까. 주가가 유증 신주발행가액(4345원)보다 높을 수록 청약률도 오를 수 있다. 개장 전 터진 '유증 성공' 소식에 이날 대한전선 주가는 5%가량 급등, 사흘만에 상승세로 마감했다.

보도자료에 실린 IB(금융투자)업계 코멘트도 이례적이었다. 대표주관사인 하나대투증권발(發)로 추정(?)되는 업계 관계자는 "대한전선이 이번 대규모 유증을 성공함에 따라 BW(신주인수권부사채) 조기상환청구에 대응할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 유동성 위험을 완전히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청약률이 얼마나 높길래 이러나 싶어 주관사에 전화를 걸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전까지만 해도 양호했던 경쟁률이 오후 들어 1대 1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반 청약 열기가 기대만 못해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주문 물량을 도로 빼버린 탓이다.

결국 대한전선 유증 공모 청약은 경쟁률 0.9678대 1로 마감됐다. 30억여 원 미달이었다. 허탈한 결과에도 불구, 회사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항변은 이랬다. "인수단과 잔액인수 계약을 맺었으니 목표한 자금 조달엔 성공한 것 아닌가." 이어 "2차 발행가액(4395원)이 1차가액을 웃돌면서 유상증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였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10월 1000억 원 규모의 BW를 발행한 동부제철도 자금 조달엔 성공했다. 무려 700여억 원에 달하는 미매각분을 인수단이 받아줬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선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하지 않는다.

대한전선의 유증 거래에 뛰어든 인수단은 '미매각'이라면 치를 떨만한 증권사들로 이뤄졌다. 4월 상장한 SBI모기지 공모 청약에서 150억 원가량의 실권 물량을 떠안은 하나대투증권, 동부제철 BW 실권주 290억 원 어치를 떠안은 아이엠투자증권(공동주관) 등이다. 이들에겐 미달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1억~2억 원도 아쉬운 상황이다.

그밖에 LIG투자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 동부증권, 유진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다른 인수사들도 과거 한두 건씩의 청약 미달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진 못했다.

금전적 부담을 덜어냈다고는 하나 사측이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자평하는 것도 성급한 감이 있다. 이번 증자 거래는 높은 부채비율(약 690%)로 인해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 회사가 자본을 늘려 빚을 갚고자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옥을 옮기는 것도 결국 연 40억 원이라도 아껴 보겠다는 의도로 내린 결단 아니던가.

대한전선의 근시안을 목격한 투자자 반응은 냉랭하다. 10일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6% 안팎의 낙폭을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과잉 기대감에 오른 데 따른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청약 미달의 책임은 증권사들이 짊어졌지만, 한 치 앞을 못보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한 대가는 당사자가 치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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