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01월 09일 15: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2월11일, 삼성증권이 조직개편을 했다. 때되면 하는 의례적인 조직개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도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니 행간에 숨은 뜻이 많았다. 조직개편의 핵심은 SNI 본부의 신설. 30억원 이상의 거부(30억원이 거부라는데 이견이 있겠지만)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SNI는 'Samsung & Investment'의 약자로, 삼성증권은 지난 2010년 6월 고액 자산가를 확보하기위해 SNI 사업부를 만들었다. 일종의 파일럿 부서로 기획됐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삼성증권은 ‘부자'에 대한 확신을 가진 듯하다. 1명의 부자 고객이 나머지 9명의 일반 고객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시계를 정확히 10년전으로 되돌려 보자. 2002년 12월16일, 당시 삼성증권 사장이었던 황영기 씨는 "주식 약정을 직원평가 항목에서 완전히 제외하고 자산확대에 치중할 방침"이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브로커리지 중단으로 인한 수익 감소는 "교육비로 치면 된다"라고까지 했다. 이렇게 삼성은 주식약정 위주의 영업 관행을 깨고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개념을 우리 증권업계에 도입했다. 삼성증권이 지금의 SNI 본부를 만들 수 있게 된 시발점이다.
10년간 삼성증권은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쳤다. 내부에서조차 "잘 될까"라는 냉소적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자산관리 강화는 황 사장을 이어 후임 사장들까지 고집스럽게 이어졌다. (이 시기에 모 대형 증권사는 자산관리 영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오히려 브로커리지 영업을 확대하는 강수를 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최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결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지난해 말 기준 리테일 고객예탁자산은 111조원으로 이중 예탁자산 1억원 이상인 고객이 맡긴 돈은 50%에 달한다. 업계 최고다. 2008년 5만명을 넘어섰던 삼성증권의 예탁자산 1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들은 2010년 7만9000명까지 늘었다. 초고액자산가로 분류되는 예탁자산 30억원 이상 고객들도 1300명 정도로 지난 몇 년간 큰 변동이 없었다. 브로커리지 영업에 치중해온 다른 증권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성 고객이 됐다.
하지만 그 뿐. 부자 고객이 많다고 삼성증권의 수익구조가 바뀐건 거의 없다. 브로커리지 수수료 비중은 2004년 42%에서 지난해 연말 29%로 줄었지만 금융상품 비중은 22%에서 25%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여전히 개별 상품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대부분인 셈이다. 시스템 자체가 바뀐게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프라이빗뱅크인 UBS나 크레디트스위스(CS)의 경우 매분기 혹은 매년 고객의 자산규모에 비례해 관리보수 혹은 자문수수료(Fee)를 받는다. 예를 들어 고객이 10억원을 맡기면 그에 상응하는 자문을 해주고 연간 100bp의 관리보수를 받는 식이다. 수익률이 높으면 성과보수도 받는다. 따라서 시황에 상관없이 항상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자산관리 시스템은 이와는 정반대다. 자금 운용에 대한 자문이나 세무, 부동산, 가업승계 등은 당연히 제공해야 할 공짜 서비스다. PB들이 "이번엔 이 상품이 좋아보입니다"라고 자문하면 선심쓰듯 거래를 맡긴다. 그게 주식이든, 채권이든, 금융상품이든 상관없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발생하면 수수료를 떼어가고 이게 곧 증권사의 수익이 된다. 말만 자산 관리지 과거 브로커리지 영업과 별 차이가 없다.
물론 삼성증권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책으로 통합자산관리 계좌인 UMA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자문 서비스는 공짜'라는 고객들의 인식 탓에 저변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름 이해가 되지만 부자들의 사고방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년 후에나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삼성증권은 앞으로 5년간 1억원 이상의 우수 고객수를 지금의 두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외형만 예쁘게 포장한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10년 전 삼성증권은 남들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갔다. 그것이 삼성증권의 지난 10년을 바꿔놓았다.
이번 기회에 부자 고객들에게 자문수수료를 내도록 강요해보는 것은 어떨까. 손해가 난다면 10년 전처럼 ‘교육비'라고 우기는 배짱을 부려보는건 어떨까. 삼성증권이 바라는 압도적 1위를 위해 다시 한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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