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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니면 못한다"…대기업 장기 CP 급증 우량기업 1.6조원 순발행…규제 3개월 유예로 당분간 확산될 듯

황철 기자공개 2013-02-13 08:01:31

이 기사는 2013년 02월 13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1월 만기가 1년을 넘는 장기 기업어음(CP) 발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사실상 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규제가 시행되기 전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폭발했다.

특히 신용등급 AA급의 우량 대기업들이 대거 장기 CP 발행 행렬에 동참했다. 사실상 회사채와 다름없을 정도로 긴 만기의 CP를 발행함으로써 공시나 수요예측 등 투자자보호 절차를 피하고자 한 것이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장기 CP에 대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화를 3개월 유예함에 따라 이 같은 사례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 장기CP 56조, 시장 40% 잠식..우량 대기업 발행 잇달아

1월말 현재 기업어음(CP, ABCP) 잔액은 135조7630억 원을 나타내고 있다. ABCP 76조9635억 원, 일반 CP 58조7995억 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장기 기업어음은 56조1706억 원으로 전체 41% 차지한다. 만기가 딱 1년인 물량(11조794억 원)까지 합하면 전체 CP의 절반 가량이 1년 이상 만기로 채워져 있다.

지난 달에는 장기 기업어음 발행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한달 동안 발행된 장기 기업어음은 4조7006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한달 평균 발행량 3조5441억 원보다 1조1561억 원이나 늘었다.

특히 일반기업이 발행한 장기물은 1조3763억 원으로 월 평균액 6317억 원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월1일 LG실트론이 발행한 2000억 원까지 합하면 1조5763억 원으로 늘어난다.

장기 CP 2

최근 장기 CP 발행사 중에는 그간 CP 조달 자체가 적었던 우량 대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GS건설 5000억 원, 두산중공업 2000억 원, 대림코퍼레이션이 500억 원 어치를 발행했다. GS건설은 지난해 23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장기물을 찍었다. 3년6개월만의 CP 발행으로 만기는 무려 5년에 달했다.

두산중공업 역시 같은달 14일 만기 3년물로 2000억 원을 마련했다. 이 자금은 21일 만기도래채권 2000억 원을 갚는 데 직간접적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3년물 CP 1000억 원 어치를 발행한 바 있다.

대림코퍼레이션도 2008년말 이후 4년여만에 3년 짜리 초장기물로 500억 원을 조달했다. 당초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지만 수요예측 실패를 우려해 장기 CP로 눈을 돌렸다. 건설사가 주축인 그룹의 계열사로서 채권 시장에서 평판 리스크가 크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 대림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당초 공모채 발행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대림산업이 수요예측에 실패하는 등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장기 CP가 금융비용 측면에서도 낫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발행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연합자산관리 역시 1월17일 회사채 수요를 대체해 만기 2년 짜리 CP 2300억 원 어치를 찍었다. 같은달 9일 실시한 수요예측 이후 대표주관사와 금리 결정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회사채 발행을 철회한 직후다.

LG실트론도 2월1일 3년, 5년물로 나눠 12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사실상 만기구조까지 회사채와 다름 없이 짠 것.

이밖에 LS네트웍스와 한국스탠다드차터드금융지주가 각각 500억 원, LIG넥스원·KT렌탈·한일시멘트가 각각 200억 원씩을 발행했다. 우리캐피탈, 아주캐피탈, 두산캐피탈, 한국캐피탈 등 여전사의 장기 CP 발행도 이어졌다.

◇ 미공시 ABCP도 규제 전 폭증, 시장 교란

장기 CP의 단기간 폭증에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다. 2월 CP 제도 개선안 시행으로 장기물 발행 유인이 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 결과적으로 3개월 유예라는 단서가 붙으며 5월로 연기됐지만지난달 말까지만해도 2월 전 조달을 완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후문이다.

CP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온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미공시 ABCP가 비이상적으로 폭증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 실제로 지난해 8월말 37조3764억 원이던 미공시 ABCP 잔액은 매달 3조~4조 원씩 잔액을 늘려 1월말 50조5229억 원까지 급증했다. 전체 ABCP 76조9635억 원의 2/3(65.6%)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미공시 ABCP의 경우 1일 '신용평가등급 모범규준' 시행으로 신용평가사를 통해 평정 내용을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공시 ABCP의 거의 대부분이 장기물이어서 증권신고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발행조건이나 투자위험 등은 당분간 파악하기 힘들 전망이다.

이 때문에 규제의 실질적 효과를 보려면 장기 CP의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장기 CP 확산에 대해 "시장 정화 측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대기업과 증권사가 오히려 개선안의 취지에 역행하며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선진적인 재무정책은 시장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라며 "CP 제도를 개선하자는 분위기 속에 모범을 보여야 할 선도 기업이 푼돈 몇 푼 때문에 오히려 왜곡된 관행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를 통해 등급과 평정내용을 공개한 것은 분명 진일보 한 것이지만 이것 만으로는 정보접근성에 한계가 많다"라며 "ABCP의 경우 SPC 이름부터 생소해 일일이 검색하기가 힘들고 요약 보고서는 증권신고서보다 정보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발행 주체들도 신용평가사 공시보다는 증권신고서 제출에 더 부담을 갖기 때문에 규제의 효과를 발휘기 위해서는 장기물의 신고 의무화를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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