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09월 03일 17: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방미 기간 중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34분 동안 ‘영어로' 연설했다. 박 대통령은 상하원 의원들로부터 연설을 전후해 기립박수 6차례를 비롯해 모두 40차례의 박수를 받았다.하지만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어를 두고 굳이 영어로 연설을 해야 했느냐'는 지적에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외교적 배려였다'는 의견이 맞섰다.
# 국민연금이 400조원에 달하는 기금 운용을 책임질 기금운용본부장 모집에 나섰다. 세계 4대 연기금에 걸맞게 자격요건도 엄격하다. 그런데 공개모집 요강에 특이한 문구가 하나 눈에 띈다. "면접시 외국어 구사능력평가 포함."
공모 과정에 으례 포함되는 문구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 얘기로는 "후보들을 대상으로 영어 면접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갑 중의 갑'인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장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겠다는 것이다. 외국계 운용사 출신들은 벌써부터 환호성이다.
해외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 기금이사의 영어 실력을 확인하겠다는게 일견 타당해 보인다. 실제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나기 위해 외국의 유명 투자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꽤나 폼나고 멋있어 보일 것도 같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이미 기피 대상이다. 일은 많고 보수는 적다. 사적으로 밥 한끼 먹기 힘들고, 골프는 언감생심이다. 각종 규제와 시도때도 없이 벌어지는 감사는 커다란 '장벽'이 된지 오래다.
기금운용의 목적은 연금재정의 장기 안정과 미래 원활한 연금 급여 지급을 위해 운용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기금이사의 제1 덕목은 '운용능력'일 수 밖에 없다. 운용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 벽을 허물어야할 국민연금이 오히려 새로운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과의 면담은 통역을 쓰면 된다. 400조원을 굴리는 '슈퍼갑'을 만나서 돈을 받으려는 외국인들에게 그 정도는 당연한 비용이다. 오히려 민감한 투자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설픈 영어보다 전문 통역사를 쓰는게 더 낫다.
백번 양보해서 상생경제에 걸맞게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갑'으로서 군림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외국인보다 국내 운용사에게 '갑질'하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하는게 우선 아닐까 싶다.
이번 발상이 박근혜 대통령의 영어 연설에 발맞춰 나온건 아닌지 씁쓸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국민연금 대변인을 뽑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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