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10월 15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계 순위 38위 동양그룹이 무너졌다. 동양그룹의 몰락은 여기저기서 후폭풍을 낳고 있다. 당장 은행들은 동양그룹에 꿔준 돈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이다. 동양그룹 금융 상품의 불완전 판매 문제가 불거지면서 증권업계는 물론 금융당국까지 바빠지고 있다.재계는 말할 것도 없다. 몸을 바짝 엎드리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시장의 모든 눈이 '제2의 동양'을 찾는데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 다음 타자가 누가 될지, 어떤 기업의 주머니 사정이 제일 어려운지, 과거 무리한 투자를 한 기업은 어딘지, 의심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동양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던 감독기관이나 금융기관, 신용평가기관들은 더 날카로운 눈으로 기업들을 살피고 있다. 동양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감시의 수준을 높이고, 선제적인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 두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라 정황 증거만 가지고 감시망을 들이대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재계 관계자는 동양 사태 이후 눈코 뜰 새 없었던 자신의 일과를 넋두리하듯 이야기했다. 2000년 이후 단행했던 대규모 투자가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장 예측 때문에 회사가 '제2의 동양' 후보군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숫자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정황과 가능성만을 가지고 자신들을 의심하니 뾰족한 대응방안을 찾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우발성 악재를 근거로 소속 기업을 동양 그룹 후속 타자로 지목하는 기관들에게 아쉬움을 표한 기업 관계자도 있었다. 실적과 재무건전성 등을 근거로 회사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2의 동양이 누가 될지 먼저 예측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부실기업 후보로 지목됐다는 사실 자체로 자금 조달을 비롯해 경영 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기업들은 직면해있다. 동양 사태 재발을 막는다는 이유로 합리적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제2의 동양 낙인을 찍어서는 안되는 이유기도 하다.
낙인이론은 1960년 대 등장한 유명한 범죄학 이론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에 의해 일탈자로 인식되는 사람이 결국 범죄자 되고 만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이후 낙인이론은 사회 심리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로도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IMF 구제 금융을 받은 경험이 있는 나라일수록 외부 투자가들의 편견 탓에 자본 흐름이 더 불안하다는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동양 사태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는 지금, 부실기업 낙인 찍기가 한참이다. 낙인이 찍힌 기업은 부실기업 꼬리표를 단 채 시장으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있다. 낙인의 무게를 견디기가 너무 버거운 상황이다.
부실기업 감시행위는 제2의 동양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 노력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동양 사태를 유발시키는 낙인이 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냉철한 판단과 합리적 분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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