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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회장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 [thebell note]

신수아 기자공개 2013-12-19 09:44:48

이 기사는 2013년 12월 18일 10: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저는 CJ그룹의 회장입니다."

탈세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회장의 첫 공판일인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김용관 부장판사가 던진 '직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짤막하게 자신의 직함을 알렸다. 이 회장은 이후 공판 내내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석 달 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이 회장이 이날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꾹 눌러 쓴 진 회색 모자와 목도리를 동여 맨 이 회장은 어두운 갈색 뿔테 안경 너머 보이는 눈만 깜박이며 재판장에 들어섰다. 오른손으로 짚은 지팡이로는 부족했는지 결국 휠체어에 앉았다.

비자금·배임·횡령. 제법 무거운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 초췌한 모습이 아직 수술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을 느끼게 했다. 서증조사가 진행되는 두시간 남짓 동안 그는 가끔씩 고개를 떨구거나 눈을 꼭 감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간혹 시선을 돌려 재판장을 어렴풋이 둘러봤다. 그 시선의 화각 안엔 맨 앞 줄에 조용히 앉은 김희재 여사가 있었다.

이 회장을 비롯해 함께 기소된 CJ그룹의 주요 인사들은 조용히 곁을 지켰다. 다만 입을 모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적잖게 확산되고 있는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부담스러웠다는 추측만 가능케한다.

이 회장의 국내외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 물살을 탄 이후 지난 7월 구속수사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몇 개월에 불과하다. 이후 신부전증을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고, 이 과정에서 집안의 '유전병'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오너의 경영 공백은 '제2의 CJ'를 꿈꾸던 그룹에 악재로 작용했다. 굵직한 사업은 중단됐고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출렁였다.

5개월 만에 공개석상에 선 이 회장은 한마디로 수척했고 잔뜩 움츠린 어깨는 마냥 무거웠다. 이 회장의 불편한 걸음걸이는 지금의 CJ그룹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오너의 비자금과 배임·횡령이란 혐의는 치명적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활발한 논의는 진보된 경영시스템과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은 사회적 강자가 지닌 특권의식의 바탕엔 합당한 의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기업의 오너는 정직하게 장사하는 상인이자 다수의 임직원을 책임지는 리더다. 사회적인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인이기도 하다. 혐의 여부를 떠나 하얀색 마스크에 가려져 쉽사리 드러나지 않은 이 회장의 표정 뒤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반성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의 제목이다. 왕관의 무게엔 높은 도덕성과 국민의 기대가 함께 녹아 있다. 오너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마냥 무거워도 괜찮다. 그 무게를 견디는 것 또한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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