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05월 21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투자자문사 하면 으레 '부티크(boutique)'를 떠올린다. 월가에서 부티크는 개인 자산 관리 뿐 아니라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 기업금융까지 담당하는 금융회사로 여겨지지만 국내에서는 야인들의 주활동 공간으로 치부해 왔던 게 사실이다.사고를 친 자문사도 많다.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진 자문사는 물론이고 자문사 대표가 고객 돈을 빼서 달아나는 사건 등 개인 대상으로 말 그대로 '사기'를 친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자문사에 붙여진 왠지 모를 부정적인 이미지의 '부티크'는 주홍글씨같이 여겨졌다.
그런데 2008년 이후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자문업계에 오히려 약이 됐다. 주된 먹거리였던 주식형 랩의 추락과 함께 자문사들도 경쟁력에 따라 옥석가리기가 진행된 것이다. 문을 닫거나 닫을 위기에 처한 자문사가 부지기수인 반면 독보적인 입지를 확고히 한 자문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창적인 경쟁력을 갖춘 곳은 순식간에 자문업계의 수위 자리를 넘봤다. 일부는 자산운용사로 전환하기도 했다. '주식 부티크'로만 치부하던 제도권에서도 일부 자문사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게 된 배경이다. 대형 증권사들도 하나 둘씩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자문사가 증권사와 손을 잡고 내놓은 상품 중 단연 돋보인 건 삼성증권과 VIP투자자문의 '자문형 ELS랩'이다. 저평가 종목 선정에 탁월한 VIP투자자문이 ELS를 만들고 삼성증권이 이를 랩(Wrap) 상품으로 만들어 고액자산가들에게 판 것이다. 판매고 3000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삼성증권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녹인(Knock-In) 종목 하나 없이 8%대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한금융투자의 ARS는 판매고 1조 원을 돌파했다. 원금을 보장하는 롱숏 주식 운용 상품으로 운용을 담당하는 자문사는 쿼드와 그로쓰힐, 프렌드, 타임폴리오 등이다. 이들이 ARS 성공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이들 자문사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창구가 됐다. 자문사로서는 접하기 힘든 규모의 고객들을 모아줬고 또 대규모 주식 운용의 트랙레코드(Track Record)도 쌓게 해줬다.
하지만 과실을 나누는 측면에서 보면 아쉽다. 1조 원을 판매한 ARS의 경우 신한금융투자는 판매 수수료와 주식스왑 수수료 등을 합쳐 수백억 원대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성공의 밑바탕이 돼준 자문사들에게 돌아간 몫은 이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 같다. 운용을 잘못하면 다른 자문사로 교체될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삼성증권과 VIP투자자문의 자문형랩은 VIP투자자문이 기회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경우다. 다른 금융회사 PB들도 탐내는 자문형 ELS랩을 VIP투자자문이 삼성증권에서만 단독 판매하는 의리 아닌 의리를 지키고 있다. 삼성증권이 VIP투자문에게 다른 증권사로 판매 채널을 확대해도 좋다는 언급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증권 외 다른 증권사와 은행으로 판매 창구가 확대되면 충분히 1조 원대 메가 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펀드 뿐 아니라 증권사나 은행 자체적으로 생산한 금융상품 중 지난해 히트를 친 상품은 거의 없다. 그나마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고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것 대부분이 자문사가 밑바탕이 돼 준 상품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 과실이 이들 자문사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자문사들의 독창성을 지켜주고 또 대형 증권사 스스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투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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