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3월 31일 15: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주총회장에 들어서는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경호원에 둘러싸여 총회장 좁은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삼삼오오 모인 기자들이 앞다퉈 던진 질문에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문 채 통로 바닥에 깔린 카펫만을 응시하며 총회장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이날 주총은 예상대로 주주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고 사장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의 관심사는 감사보고 및 영업보고서 승인도, 이사 선임도, 잉여금 처분 내역 등 동의도 아니었다. 관련 사안들은 사실상 '거수기' 역할로 여겨지는 주주가 마치 대본을 읽듯 동의 의사 대표 발언을 하고 이에 나머지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가결됐다. 반대 의사는 없었다.
이보다 관심은 고 사장의 후임 대표이사 인선에 온통 집중됐다. 어떤 주주는 고 사장 임기가 지난 29일부로 끝났다는 점을 들어 어떤 근거로 주주총회 의장을 맡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변호인으로 참석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정관 36조 2항 등을 근거로 "퇴임 전까지 이사를 지속할 수 있고 이는 대법원 판례로도 증명된 사안"이라며 의구심을 잠재웠다.
노조 측 대표로 참석한 주주 중 하나는 발언권을 얻은 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을 지탄하는 언급을 쏟아냈다. 후임 인선이 늦어지면서 수주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올해 들어 지난 두 달 동안 단 한 건의 수주도 없었다며 이를 대표이사 인사가 지연되고 있어 빚어진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일리는 있었다. 선주들은 사장 자리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선사에 일감을 맡기고 싶지 않아 한다. 현직 대표이사 시절 맺은 발주 계약은 후임 대표이사가 들어선 후에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알 수 없다. 대표이사 인선 지연은 노동자 입장에서도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분명 아니다. 우두머리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은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해당 주주는 주주총회에 산업은행(산은) 측 대표로 참석한 주주에게 이와 관련된 답변을 요구했다. 도대체 왜 인사가 늦어지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대표이사 문제로 수주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은 대주주이자 국책은행인 산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함께 내놨다.
산은 측 관계자는 "발언을 거부한다"고만 밝혔다. 또 다른 주주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대주주 대표가 당당히 일반 주주들도 알 수 있게 말을 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도의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발언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산은 관계자는 발언 거부 의사만 연신 밝힐 뿐이었다.
이에 대해 노조 측 관계자는 사장 인선 지연이 만약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한 목적이라면 총파업 등 결사 반대 행위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5만여 명 직원들 삶의 터전이지 정치판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산은의 안일한 태도는 대우조선해양이 생산 중단 등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을 그만큼 키우고만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 공적자금이 투입돼 기사회생한 곳이다. 산은이 대주주라고 하더라도 실제 주인은 곧 국민이라고 볼 수 있다.
산은은 지금이라도 인선이 왜 지연되고 있는 것인지 속내를 밝혔으면 한다. 이도 아니라면 서둘러 후임 인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직원들과 주주들의 불신을 쉽게 수그러뜨리기 어려울 것이다. 주주총회에서 많은 이들이 느꼈던 실망감이 장기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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