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7월 15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4년 5월 은행, 보험, 카드, 증권, 저축은행 등 17개사의 전국 3000여개 지점 출입구엔 A4크기로 된 한장의 공지문이 붙었다. 공지문에는 '2013년도 금감원 민원발생평가 결과'란 검은색 작은 글씨 아래 폰트 55 사이즈의 붉은 글씨로 '5등급(불량)'이라고 적혀 있었다.금융감독원이 민원감축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최하위등급 금융회사들에게 민원발생평가 등급을 게시토록 한 것이다. 3개월간 게시토록 한 공지문은 한달이 안돼 사라졌다. 해당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망신주기식 '주홍글씨'라며 거세게 반발한 탓이다.
과도한 제재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주홍글씨 사태 이후 금융회사들의 민원감축 노력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민원관리 부서들이 CEO 직속으로 편입됐고, 매달 CEO에게 민원 감축 현황이 보고됐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보험사 보상센터에선 민원 관리 목표를 초과하게 만든 직원은 공공의 적이란 눈총을 한몸에 감수해야 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 민원발생평가에서 많은 금융회사들이 최하위 등급 탈출에 실패했다. 그 후 민원발생평가 방법론 자체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업종별 영업규모 대비 민원건수를 기본으로 평가하다 보니 영업규모가 적은 곳은 평가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불만이 쏟아지자 새로운 민원발생평가인 소비자보호실태평가제도 도입에 나섰다. 기존 민원발생평가가 민원 감축 유도보단 금융회사의 성적 매기기로 본래 취지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비자보호실태평가제도는 기존 평가와 달리 1~5등급으로 회사를 평가하지 않는다. 계량항목 5개, 비계량항목 5개 등 총 10개 항목을 평가하고, 각 항목마다 '양호', '보통', '미흡' 등의 평가를 내린다. 또 종합평가를 배제해 회사별 단순비교를 지양한다.
단순비교를 지양한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회사별 명암은 갈린다.
과거 민원발생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회사는 소비자보호실태평가 10개 항목에서 모두 '양호' 평가를 받아야만 본전치기가 가능하다는 부담을 안는다. 반면 하위 평가를 받은 회사들은 기대감에 부푼다. 영업규모가 적어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지 못한 최하위 등급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원발생평가 만년 5등급인 A 보험사의 경우 민원감축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A보험사는 지난해 소비자보호 헌장제정 및 소보자보호 선포식을 개최했다. 민원관리시스템인 VOC시스템(Voice of Customer SYSTEM) 구축, 월 1500건 이상 VOC 접수 및 분석을 통한 업무개선, 매월 소비자보호 협의회 개최, 매월 소비자보호의 날 지정 및 임직원 대상 VOC 체험 등을 도입했다. 이 노력이 조금만 인정돼도 소비자보호실태평가 비계량항목에서 '양호'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비슷한 처지의 외국계 은행은 아예 사내방송을 통해 매일 목표 민원 현황과 도달률을 알릴 정도다. 사내방송을 맡고 있는 한 직원은 경영진 모두가 민원감축 노이로제에 걸린 듯 하다고 말할 정도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까지 60여개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실태평가 현장점검을 마치고, 회사별 평가에 착수했다. 아직 그 누구도 어떤 성적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소비자보호실태평가가 망신주기식 주홍글씨 낙인찍기에서 벗어나 회사들이 민원감축 부문에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나타내는 종합 진단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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