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뒤집힌다'…거부 못할 소용돌이 [SK의 도시바 인수 도전] ①낸드시장 재편 가능성…하이닉스, '도약 or 도태' 기로
정호창 기자/ 윤지혜 기자공개 2017-03-14 18:34:41
[편집자주]
일본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업계 2위인 반도체사업부 매각을 결정해 메모리반도체 업계와 인수합병(M&A)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매각 결과에 따라 낸드플래시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예상돼 반도체 업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국내 기업 중 유력 인수후보로 꼽히는 SK하이닉스의 인수 가능성과 전략, 변수 등을 분석해본다.
이 기사는 2017년 03월 09일 08: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도시바가 반도체부문 분사를 계획한 것은 미국 원전 사업에서 7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어 자본잠식 위기에 몰린 탓이다. 이 때문에 도시바는 일본 도쿄증시 1부에서 2부로 강등될 위기에 직면했고, 채권단의 강한 압박을 받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도시바는 당초 유상증자 방식으로 우선주를 발행한 뒤 투자자에게 분할하는 반도체 신설법인 지분 19.9%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딜 구조를 짰다. 하지만 재무구조 악화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 기존 방식으론 재무위기를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해 반도체부문 신설법인의 지분 50% 이상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딜 구조가 소수지분을 넘기는 투자자 유치에서 경영권 지분을 넘기는 진성매각으로 전환된 셈이다.
◇낸드플래시 시장 2강 재편 도화선
도시바 반도체의 매각구조 변경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딜 결과에 따라 낸드플래시 업계에 대형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도시바는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18.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점유율 37.1%로 독보적인 1위 자리에 올라있는 삼성전자에 이어 업계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도시바의 뒷자리는 미국 샌디스크를 인수한 웨스턴디지털(WD)이 17.7% 점유율로 3위를 차지하고 있고, 마이크론(10.6%)과 SK하이닉스(9.6%)가 각각 4위와 5위를 점하고 있다.
동종업체 중 누구라도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 바짝 뒤쫓는 점유율을 확보해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을 2강 구도로 양분할 수 있다. 3~5위 업체 중 도시바 인수자가 탄생할 경우 업체별로 각각 △WD 36% △마이크론 28.9% △SK하이닉스 27.9%의 시장 파이를 확보하게 된다.
이 경우 1·2위 사업자가 전체 시장 점유율의 65~73%를 차지하게 돼 낸드플래시 시장이 과점구도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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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도약 or 도태' 갈림길 직면
도시바가 매각 구조를 변경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업계 2위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이자, 낸드플래시 시장 도태를 야기할 지 모를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자리를 굳게 지키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으나, 신규 먹거리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하위권에 머물며 고전 중이다. 점유율은 물론이고 기술과 양산능력 등에서 모두 선두 기업들에 뒤져있는 상태다.
만약 도시바 반도체가 경쟁사인 WD 등에 넘어가 낸드플래시 시장이 2강 구도로 재편될 경우 SK하이닉스는 상위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기는커녕 군소업체로 전락해 시장에서 도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이미 D램 시장에서 증명된 일이다. 1990년대 20여 개 업체가 존재하던 D램 시장은 '치킨게임'이라 불린 업체간 치열한 경쟁 결과, 현재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개 업체 중심의 과점체제로 전환됐다. 낸드플래시 시장 역시 도시바 반도체 M&A를 계기로 같은 전철을 밟아 3위 이하 업체들이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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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사업자가 아닌 이종업계 후보가 도시바 반도체 새 주인이 돼 시장에 입성해도 SK하이닉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인 폭스콘을 거느린 대만 홍하이 그룹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경우 SK하이닉스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홍하이 그룹은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위해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인 TSMC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시장에선 홍하이가 긴밀한 사업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SK그룹과 손잡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홍하이는 결국 같은 대만기업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홍하이-TSMC 컨소시엄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성공할 경우 SK하이닉스는 폭스콘 등에 공급하던 낸드플래시 물량의 상당수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게 되는 홍하이가 자사 제품에 도시바 낸드플래시를 우선 탑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단숨에 시장 선두업체로 도약할 수 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최초로 발명한 기업으로 업계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성공하면 시장 점유율 확대는 물론이고 부족한 컨트롤러 기술 등을 손에 넣고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할 수 있게 된다.
◇천문학적 투자비, M&A 추진 '걸림돌'
약점인 낸드플래시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SK하이닉스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천문학적 자금 지출에 따른 재무 부담 급증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도시바 반도체 신설법인의 지분 100% 예상 인수가격은 15조~24조 원 수준이다. 일각에선 인수 경쟁이 과열될 경우 거래가격이 25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영권 확보가 가능한 '50%+1주'의 지분 인수에만 1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 기준 4조 원 수준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부담이 큰 액수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수조 원을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한다.
인수로 자금 지출과 재무 부담 증가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도시바가 평면 구조의 2D 낸드 분야에선 강자이나, 차세대 제품인 적층 구조의 3D 낸드 부문에선 아직 삼성전자에 크게 뒤쳐진 상태다.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향후에도 대규모 설비투자와 R&D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딜 결과에 따라 낸드플래시 업계 재편 가능성이 높아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적극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적정 가격에 인수할 수 있다면 최상이나,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면 재무 부담이 커지는데다 안팎으로 투자 적정성에 대한 반론과 우려가 제기될 수 있어 M&A 추진에 대한 고심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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