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4월 03일 11: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창업투자 업계에는 스티브 잡스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자리잡기 쉽지 않을 겁니다."얼마 전 만난 한 창투사 대표가 해묵은 농담을 꺼냈다. 주요 출자사업을 대비해 산업계 경력을 갖춘 신임 운용인력을 선발했지만 창업투자 경력이 적은 탓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국내 유한책임사원(LP) 들은 운용사 선정과정에서 운용인력의 창업투자 경력을 최우선시 해 왔다. 운용인력이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산업계 경험을 쌓았더라도 단순 참조되거나 아예 제외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무시 못할 산업 경력을 갖춘 운용인력이라도 창업투자 경력이 없다면 단지 '새내기'로 치부되는 셈이다.
LP들은 모험자본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는 만큼 수 년 간의 창업투자회사 투자경험이 산업계 경력보다 훨씬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설득력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다소 동떨어진 기준은 아닐까.
기존 창투업계가 주목했던 정보기술(IT)이나 반도체 등의 특정산업은 더 이상 투자 매력을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모바일과 바이오는 물론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A·VR) 등이 새로운 성장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쏟아지는 출자사업 역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투업계의 이전 투자 관점만으로는 새로운 산업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운용인력이 새로운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췄다면 좀 더 매력적인 투자대상을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한 운용사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새로운 산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로봇,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이 꼽힌다"며 "4차 산업은 기존 산업들의 융합(Convergence)과 연결(connect)에서 시작되는 만큼 여러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심사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근 LP들도 운용인력의 기준을 낮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절반만 인정하던 운용인력의 산업경력을 70% 이상까지 높였다. 한국벤처투자 역시 참조만 하던 산업경력을 우대 사항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산업은행 등 투자수익과 정책목적을 강조하는 보수적 성향의 LP들은 아직 변화를 택하진 않았지만 기준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풍부한 산업 경험을 갖춘 운용인력의 유입은 빠른 기술발전에 대응하는 창투업계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부족한 인력 규모 탓에 다른 창투사의 인력을 빼내오던 폐해도 사라질 수 있다. 고인 물을 빼내고 새로운 물결을 채우기 위한 LP들의 변화 노력이 반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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