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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CB 투자 '숨은 포석'은? [도시바 M&A]인수전 승리 위한 현실적 방안… 중장기 영향력 확보 '묘수'

정호창 기자공개 2017-06-30 10:34:01

이 기사는 2017년 06월 27일 16: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낸드플래시 업계 2위인 도시바 메모리 인수 우선협상권을 확보한 한·미·일 컨소시엄에 원칙적으로 경영 참여가 불가능한 자금 대여자로서만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뭘까. 인수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를 감안한 고육책이란 평가에 우선 무게가 실리나,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교두보 마련을 염두에 둔 전략적 묘수라는 호평도 뒤따른다.

27일 재계 및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한·미·일 컨소시엄 내 역할과 지위는 인수자금 일부를 대여 방식으로 지원하는 재무적 투자자(FI)에 국한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산업혁신기구(INCJ), 일본정책투자은행(DBJ)과 함께 컨소시엄 주체로 나선 베인캐피탈이 설립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전환사채(CB) 3000억 엔 어치를 인수할 뿐 지분 투자 등에는 나서지 않는다.

SK하이닉스의 역할이 경영권과 무관한 사채권자로 한정된 것은 INCJ가 컨소시엄 합류를 용인하는 대신 내건 필수 조건으로 전해진다. 이번 매각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기술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해외 경쟁기업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불허하는 방침을 세운 탓이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 경영권에 관여할 수 있는 컨소시엄 주체로 나서면 우선 협상권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INCJ의 판단이었다. 인수전 막판까지 적합한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INCJ는 베인캐피탈과 손잡은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 합류 의사를 타진하자 이 같은 조건을 제시했고, SK하이닉스가 이를 수용하면서 극적으로 한·미·일 컨소시엄이 탄생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SK하이닉스가 FI 지위를 받아들인 것은 인수 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상태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지분 인수자로 참여해 도시바 이사회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일본 정부 승인과 그 이후 중국 등 세계 각국의 반독점 및 기업결합심사를 도시바가 거래 종결시기로 잡고 있는 내년 3월까지 모두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SK하이닉스 내부의 판단이었다.

그 같은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끈질기게 도시바 메모리 인수 컨소시엄 합류에 매달린 건 대만 홍하이 등 경쟁자의 인수를 봉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데다, 스스로도 시장 지위와 기술력이 앞선 도시바 메모리와의 전략적 제휴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SK하이닉스가 경영 참여가 불가능한 사채권자 지위를 확보하는 데 3조 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시장 5위권 사업자로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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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K하이닉스가 단순 사채권자 지위를 넘어설 포석을 마련해 둔 점, 향후 시장 변화 등에 따라 도시바 메모리에 대해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토대를 확보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면 평가는 달라진다.

냉정한 시선으로 살펴보면 사실 도시바 메모리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계륵'에 가까운 대상이다. 단독으로 인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다 손에 넣는 게 가능하더라도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인수비용만 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되고, 매년 대규모 설비투자(CAPEX)가 수반돼야 하는 반도체 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인수 후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할 지 예측이 쉽지 않다. 인수 후 낸드플래시 시장이 현재처럼 호황을 이어간다면 문제가 없지만 불황기에 접어들 경우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다.

도시바 메모리가 낸드플래시 종주기업으로 2D 기술력이 높지만 차세대 제품군인 3D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충분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도 불투명하다. 투자 효과가 천문학적 인수비용에 훨씬 못 미쳐 낭패를 보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SK하이닉스는 사채권자로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잠재 리스크를 회피하게 됐다. 향후 반도체 시황이 악화되고 도시바 메모리가 어려움을 겪어 투자나 전략적 제휴 필요성이 낮아질 경우 SK하이닉스는 사채를 회수하는 방법으로 별 탈 없이 손을 뗄 수 있다.

반대로 도시바 메모리의 경쟁력과 투자 가치 등이 확인될 경우 SK하이닉스는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베인캐피탈이 보유하게 될 도시바 메모리의 의결권 지분 일부를 간접 확보할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투자금 회수(Exit)에 나서야 하는 베인캐피탈과의 거래를 통해 보유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도시바 메모리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 만들어져 추가 투자가 쉽지 않은 인수 컨소시엄 내 FI들을 대신해 SK하이닉스가 유상증자 등의 형태로 투자를 집행하고 지분을 손에 넣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IB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인수 컨소시엄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통해 철저히 자사에 유리한 전략으로 도시바 메모리와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스크는 줄이고 운신의 폭은 넓힐 수 있는 기막힌 '묘수'를 찾아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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