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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흥국운용, 설정액 급감...반년새 무슨일이 [헤지펀드 스토리] 장·단기물 트레이딩 전략 실패, 수익률 '쇼크'...기관 자금 환매

이충희 기자공개 2018-01-24 09:20:00

이 기사는 2018년 01월 17일 09: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흥국자산운용은 2016년 국내 헤지펀드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하우스로 떠오른 곳이다. 주식 롱숏 일변도였던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채권 전문 운용사로서 처음 위세를 떨친 곳이 흥국운용이었다.

투자자들의 잇따르는 러브콜에 운용규모를 급속도로 늘려가던 흥국운용은 지난해 4월 전통의 강자 삼성헤지자산운용 펀드 설정액을 넘어섰다. 5월에는 업계 1위였던 타임폴리오자산운용마저 제치고 한국형 헤지펀드 규모 1위 운용사가 됐다. 시장에 진출한지 정확히 13개월만이다.

이처럼 화려하게 비상했던 흥국운용 헤지펀드가 최근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작년 7월 1조3000억원에 육박했던 펀드 규모는 반년 만에 4분의 1 토막이 났다.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급경사의 롤러코스터를 탄 흥국운용. 이 운용사에 무슨일이 일어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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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기 국고채 가격 요동, 대응 실수 치명타

이달 중순 기준 흥국자산운용의 전체 헤지펀드 설정액 규모는 33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다. 작년 7월 1조3000억원으로 최대치를 찍은 뒤 약 6개월 동안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이탈한 것이다.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에서 흥국운용처럼 급속도로 펀드 규모를 불렸다가 그보다 빠른 속도로 몸집이 축소된 운용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흥국운용 헤지펀드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것은 수익률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기준금리+1%'를 목표 수익률로 내세운 흥국운용 헤지펀드들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롱숏 전략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일반 채권형 펀드 대비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흥국운용은 장단기물 미래 가격을 예측해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에는 롱(Long),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에는 숏(Short)을 친다. 이런 전략은 수익률 상승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채권 가격 변동이 심한 시기에는 예측률이 떨어져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되며 국고채 금리가 요동쳤던 지난해 하반기가 딱 그 시기였다. 업계의 자산운용사 채권형 펀드매니저는 흥국운용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내 기준금리가 소폭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지난해 7월 이후부터 국고채 금리들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렇게 변동성이 심한 장에서는 방망이를 최대한 짧게 쥐고 만기가 짧은 채권을 편입해 리스크를 줄이는 게 보통이다. 흥국운용은 당시 일반적인 채권형 펀드 운용 스타일을 벗어나 30년물에도 베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30년물 가격이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였던 것이 수익률 하락 직격탄이 됐다."

흥국운용이 장기물에 베팅하던 사이 시장에서 30년물 국고채 가격은 예상치 못한 변화에 직면했다. 보험사들 사이에서 새 국제 회계기준인 'IFRS17' 도입을 앞두고 30년물 국고채 수요가 급증했다. 자산과 부채 간 잔존 만기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들이 장기 국채를 대거 사들였던 것이다. 이에 작년 10월 3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0년, 10년, 5년 만기 금리보다 낮아지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펀드 매니저는 "흥국운용의 채권형 헤지펀드들은 롱숏 전략을 쓰기 때문에 수익률에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한다"며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 시장의 채권 가격 때문에 손실률이 그만큼 더 커졌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4월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 6%에 달했던 '흥국재량투자 전문투자형사모증권투자신탁[채권]'은 작년 7월부터 매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끝에 11월 말 3%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이 펀드는 수익자들이 모두 환매에 나서 결국 12월 청산됐다. 2017년 4월 설정됐던 '흥국재량투자전문투자형사모증권투자신탁제4호'는 12월 -3.50%까지 하락했다. 일반적인 채권형 펀드 수익률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치다.



◇이어지는 기관 자금 환매…펀드 관리 난항

수익률 하락세가 시작되자 펀드에서 자금을 빼가기 시작한 기관들이 많아졌다. 흥국운용은 펀드 관리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예상과 달리 움직였던 시장을 다시 쫓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매매에 나서야 했으나, 대규모 자금 환매가 이어지며 제대로 시장에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들의 고충 중 하나는 환매되는 자금에도 제때 대응해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계획된 트레이딩 전략을 구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펀드를 운용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초 기존 흥국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이었던 성일환 상무가 퇴사한 뒤 내부 운용 관련 절차에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본부장 교체가 곧바로 운용수익률 악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증권사 관계자는 "기존에도 재량 헤지펀드를 도맡아 운용하던 박형태 팀장이 본부장으로 승진해 운용을 총괄했다"며 "본부장 교체로 벌어진 일이라기 보다는 처음 맞이해보는 금리인상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벌어진 트레이딩 실수였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흥국운용이 입은 가장 큰 타격은 기관투자자들로부터의 신뢰에 금이 간 점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흥국 재량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대부분 보험사와 공제회 등 업계 큰손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계열사인 흥국생명도 흥국운용 채권형 펀드에서 손실을 입고 일부 자금을 회수해 갔다는 소문이 업계에 알려졌다.

흥국운용 헤지펀드가 다시 재기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기존 하우스를 대체할 만한 채권형 헤지펀드 운용사가 속속 생겨난 상황에서 수익률 관리 실패 쓴맛을 본 운용사에 다시 자금을 맡기기는 힘들다는 평가 탓이다.

흥국운용이 추락하는 사이 교보증권은 채권형 펀드를 잇따라 출시하며 업계 최대 규모 하우스가 됐다. 교보증권 헤지펀드 규모는 현재 1조5000억원 수준으로 급팽창했다. 신한금융투자 등 신규 헤지펀드 하우스들도 채권형 펀드 시장 진입에 나서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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