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3월 15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말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위축됐던 양매도 상장지수채권(ETN) 시장이 기지개를 켤 조짐이다. 삼성증권이 '삼성 코스피 양매도 5% OTM ETN' 판매사로 KB국민은행을 확보하면서다. KB국민은행이 주가연계신탁(ELT)을 비롯한 파생상품 최대 판매채널이라는 점에서 삼성증권 관계자들은 고무적인 반응이다.삼성증권의 파생상품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 북(book) 규모가 10조원으로 업계 최대 수준이다. 이것도 모자라 외국계 증권사에 리스크 헤지를 맡기는 백투백 헤지 북을 새로 만들었다. 성장이 점쳐지는 ETN 시장에서도 1위 사업자 자리를 탐내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50%를 점유하며 타사를 압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성증권은 정교한 구조화상품 운용 모델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유동성공급(LP) 역량을 강화해 투자자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시장가격과 지표가치의 차이인 괴리율을 줄여 품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체계적인 전산 시스템과 주니어 트레이더 양성 노하우를 활용해 타사 대비 저렴한 운용보수를 책정할 수 있어 ETN 외형을 키우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의 역량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삼성증권은 양매도 ETN 출시 과정에서 심한 분쟁을 겪었다.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TRUE 코스피 양매도 5% OTM ETN'과 똑같은 기초지수를 사용하려 하자 이 지수를 개발한 한국투자증권과 분쟁이 격화됐다. 거래소 중재로 사태가 일단락 됐지만 삼성증권은 타사 주력 상품을 쉽게 벤치마킹 한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양매도 ETN에 앞서 'S&P500 VIX S/T 선물 ETN' 출시가 유행할 때도 삼성증권은 시류에 편승했다. 타사와 동일한 기초지수를 사용하되 운용보수를 95bp로 책정, 120bp인 경쟁사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때부터 삼성증권은 가격과 품질 면에서는 우수하지만 시장 판도를 바꿀만한 '게임체인저(Game Changer)'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한국투자증권의 양매도 ETN은 게임체인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상품이다. 이 상품이 나오기 전 양매도 전략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터부시됐다. 전략을 잘못 구사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사례가 많았던 탓이다. 한국투자증권 재직 시절 이 상품을 개발한 김연추 미래에셋대우 에쿼티파생본부장은 게임회사 출신이라 한다. '양매도 전략도 제대로 쓰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임회사 출신다운 개방적 사고가 히트 상품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조직 규모가 큰 회사는 창의적인 시도나 신속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삼성증권처럼 특정 인물의 영향력보다 내부 의사결정 체계를 중시하는 곳은 더욱 그렇다. 삼성증권은 어렵게 양매도 ETN 출시 대열에 합류했지만 최근 이 상품에 불리한 상승장 흐름이 연출되고 있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있다면 반드시 시장을 선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1등 DNA'를 입증하려는 삼성증권은 게임체인저가 되고 싶어하는 눈치다. 가능할까. 향후 양매도 ETN의 후속으로 나올 상품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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