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5월 08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 그동안 잊혀졌던 회사가 하나 등장했다. 주인공은 효성그룹 계열 건설사 진흥기업. 7년여의 기나긴 워크아웃을 끝내고 M&A 시장에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 진흥기업의 출현은 마치 열병과도 같았던 과거 재벌기업들의 건설사 사냥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중후반 그룹사들은 저마다 건설사 찾기에 혈안이었고 효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끝물에서 인수한 것이 진흥기업이었다. 금융위기가 한창인 2008년 931억원에 인수한 진흥기업은 이후 적자를 거듭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유상증자가 이어지면서 수천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사정은 금세 나아지지 않았다. 기민한 전략이나 마땅한 명분없이 단행한 M&A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그리고 그 고통은 굉장히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효성그룹에게 진흥기업은 애증의 산물이다.
건설사에 잘못 손대 휘청거렸던 곳이 어디 효성그룹 뿐이었을까. 웅진그룹이 극동건설을, 대한전선은 남광토건을 인수하며 건설사 쇼핑이 정점에 달했고 모두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건설사 인수는 외형에 집착한 탐욕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중견 이상의 기업들은 건설사를 '꼭 하나 갖고 있어야 하는' 트로피 에셋(Trophy Asset)쯤으로 여겼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트로피 에셋이란 기업의 핵심 역량이나 지향점과는 괴리가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자산을 의미한다. 대기업들은 사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견 기업들은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건설사 인수를 접근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트로피처럼 진열장에 고이 모셔두기에는 건설사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모회사가 짊어져야 했다. 웅진그룹은 태양광 투자와 극동건설의 실적 악화가 맞물리면서 사세가 쪼그라들었다. 잇따른 M&A 후유증에 시달렸던 대한전선도 그 한복판에 남광토건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금호그룹이 주력 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물로 내놓은 것도 건설사 인수라는 잘못 꿰어진 단추 때문이다. 대우건설을 시발점으로 연이어 대한통운을 집어삼키면서 순식간에 재계 순위 9위까지 올라갔지만 영광은 한순간이었을 뿐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아 여전히 금호그룹을 괴롭히고 있다.
인수 여력이나 치밀한 계산없이 오로지 몸집 부풀리기를 위한 M&A는 결국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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