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IPO 패스트트랙 개시, 주인공 되기엔 '역부족' 한국거래소, 상장 완화책 도입…대표 소외 섹터, 정책 약발 한계
양정우 기자공개 2019-12-19 07:35:35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7일 16: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섹터에 잔뜩 힘을 싣고 있다. 2019년 '소재·부품 전문기업에 대한 상장지원방안'이 발표된 후 소부장 업체를 위한 기업공개(IPO) 패스트트랙이 마련됐다. IPO를 주관하는 증권사도 내년 공모시장에 활력을 줄 신동력으로 소부장 섹터를 낙점했다.연말 메탈라이프의 상장을 시작으로 소부장 기업의 IPO 패스트트랙이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빠른 속도로 상장을 매듭짓는 만큼 소부장 IPO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다만 소부장 섹터가 내년 공모시장을 이끄는 중심축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소부장에 힘이 실린 게 시장의 요구가 아닌 정책적 대응이라는 측면이 한계로 지적된다.
◇거래소, 소부장 패스트트랙 도입…기술특례 상장보다 요건 완화
지난 9월 한국거래소는 소부장 전문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하는 IPO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소재와 부품, 장비에 대한 국산화 필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 소부장 업체의 성장 촉진에 초점을 맞추자 한국거래소가 발빠른 대응에 나선 셈이다.
IB업계에선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소부장 지원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보여주기식 지원 방안이 아닌 실효성이 높은 대책으로 진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장예비심사 기간이 기존 45영업일에서 30영업일로 단축됐다. 상장 절차의 간소화를 통해 소부장 IPO의 속도를 배가시켰다.
IPO 시장에선 늘상 상장 타이밍에 희비가 엇갈린다. 상장예비심사 청구부터 최종 공모까지 수개월 사이 시장 여건이 급변해 낭패를 본 IPO가 적지 않다. 만일 IPO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면 유통시장의 주가 사이클과 연간 IPO 스케줄에 맞춰 최적기에 공모를 단행할 수 있다. 상장예비기업 입장에서 IPO 패스트트랙은 상당한 혜택인 셈이다. 최근 상장 심사를 마친 기업을 살펴보면 심사 기간이 30영업일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거래소가 상장 요건을 완화한 만큼 내년 공모시장에서 소부장 IPO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IPO에 성공한 소부장 업체는 공모자금으로 각종 투자에 나서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부장 기업이 IPO 패스트트랙을 밟으려면 기술성평가(전문평가기관 1곳)를 받아 'A' 등급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기술특례 상장의 경우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각각 'A',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소부장 패스트트랙의 경우 기술특례 상장보다도 IPO 요건이 한층 완화돼 있다.
◇소부장 '1호' 메탈라이프, 공모 흥행…반도체 소부장 '최선호'
메탈라이프(광통신 패키지 생산)는 소부장 전문 기업으로서 IPO 패스트트랙을 밟은 '1호' 업체다. 지난달 30영업일만에 상장 심사의 승인을 받은 뒤 오는 24일 증시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메탈라이프의 IPO는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1290.2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해 최종 공모가(1주당 1만3000원)가 희망 밴드(1만500~1만3000원)의 최상단에서 결정됐다. 일반 청약 역시 준수한 성적(최종 경쟁률 1397대 1)을 기록했다. 연말 바이오 기업의 공모 성적이 부진했던 터라 소부장 섹터의 선전이 더욱 돋보였다.
IB 업계에선 소부장 섹터 중에서도 반도체 관련 기업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교역 둔화와 수출 감소를 초래했던 미중 무역분쟁이 일단 '해빙 모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경기 민감 업종으로서 큰 타격이 예상된 반도체 산업이 내년 회복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5세대 이동통신(5G) 관련 소부장 업체도 무난하게 IPO 흥행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소부장 패스트트랙을 시도하는 기업이 줄을 이을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말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레몬과 서울바이오시스, 서남 등도 IPO 패스트트랙으로 공모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소부장 섹터, 정책약발 한시적?…저평가 대표 업종, 탈바꿈 한계
다만 IB업계에선 국내 소부장 섹터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소재와 부품, 장비 기업은 오랫동안 유통시장과 공모시장에서 소외를 받은 대표 업종이다. 이 때문에 정책적 요구에 비롯된 소부장 띄우기가 언젠가 약발을 다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슈가 부상하기 전까지 소부장 전문 기업은 비슷한 수익을 거두는 다른 상장사보다 주가가 저평가돼 왔다. 무엇보다 소부장 섹터의 사업 모델은 전방에 위치한 국내외 대기업과 공생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산업 사이클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훨씬 큰 데다 업황 침체기엔 열위한 가격 협상력에 발목을 잡힌다.
IB업계 관계자는 "소부장 섹터는 산업 특성상 두 자리 수의 주가수익비율(PER)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았다"며 "최근 소부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반짝 인기에 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소부장 섹터에서 IPO 빅딜이 나올 가능성이 낮은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통신 등 국내 주력 산업은 오랜 기간 고도화가 진행돼 왔다. 그간 입지를 굳힌 대어급 소부장 업체는 이미 대부분 기업공개가 이뤄져 있다. 소부장 섹터가 내년 IPO 시장을 이끌 중심축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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