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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을까 [thebell note]

이은솔 기자공개 2019-12-31 11:23:15

이 기사는 2019년 12월 27일 11: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목에 헤드셋을 건 DJ가 음악을 틀며 리듬에 몸을 흔들었다. 환한 대낮, 은행 본점 대강당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행사 주최측을 제외하고는 한 두 명 지나갈까 말까 했다. 텅 빈 공간에서 나홀로 디제잉을 하던 DJ는 이내 민망한 듯 부스 아래로 숨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한 금융그룹 핀테크랩에서 준비한 행사의 단면이다. 이날 행사는 현직 종사자들의 네트워킹을 목표로 열렸지만 참석자는 해당 금융그룹 내부 인원과 미리 준비된 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300인분을 준비했다던 케이터링 음식은 거의 다 남았다. 결국 '우리끼리' 행사가 된 셈이다.

이런 허전함은 비단 행사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다. 금융권 핀테크랩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사들은 더 이상 핀테크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라는 모토 아래 앞다퉈 '랩(Lab)'을 열었다. 강남이나 여의도 같은 임대료 비싼 동네에 위워크보다도 세련된 공간을 마련했다. 스타트업에게 입주 공간과 협업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성장하는 '실험실'이 목표였다.

새 페인트 냄새가 폴폴 나는 넓은 사무실과 알록달록한 인테리어. 정작 그 안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 직원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네다섯개의 핀테크랩을 돌았지만 어디든 상황은 비슷했다. 관계자들은 워낙 미팅과 외부 일정이 많아 자리에 있는 경우가 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는 고가의 장비들을 보면서 어딘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한다. 금융사의 도움으로 해외에 진출한 스타트업의 사례도 나오고 있다. 거래처가 마땅치 않은 사업 초기에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되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금융사의 고급 인력들 역시 선의를 갖고 핀테크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선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존재한다. 6개월 내외의 입주 기간은 스타트업들이 선뜻 짐을 싸들고 적을 옮기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스타트업이 보유한 기술들이 테스트에만 머물 뿐 실제 협업까지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걸림돌도 존재한다.

지금의 핀테크랩 운영 방식은 물이 펑펑 새는 수도꼭지 같다. 어쨌든 틀어놓으면 물이 나오는 건 맞지만 쓸 수 있는 물보다 버려지는 물이 더 많다. 앞서 언급한 '나홀로 디제잉' 행사는 다음날 멋진 제목으로 보도됐다. 누군가는 정말 네트워킹을 쌓았을 수도 있지만 그걸 위해 들였을 비용과 낭비된 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행사를 위한 행사보다는 수도꼭지를 고치는 게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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