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맨파워분석 2020]비전공 CEO 코스닥 시총 상위에 두루 포진④스위스 로이반트도 헤지펀드 출신이 창업…자본시장·주주 관리 능해야 성공 가능성↑
서은내 기자공개 2020-02-27 08:06:19
[편집자주]
신약개발업계 만큼 인재들이 모인 곳도 드물다. 특정 범주를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다. 생물, 화학, 유전공학, 약학, 의학, 통계, IT, 농업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맥들이 자리잡고 있다. 더벨은 2019년에 이어 신약개발 키맨들을 살펴보고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5일 11: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스위스의 글로벌 신약기술 지주업체 로이반트사이언스(Roivant Sciences). 로이반트는 설립 4년만에 8조원(70억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글로벌 제약기업의 반열에 오른 회사다. 로이반트를 움직이는 건 헤지펀드 전문가 출신 젊은 CEO '비벡 라마스와미(사진Vivek Ramaswamy)'다.2014년 29세에 로이반트를 설립한 그는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 후 연구계로 가지 않고 곧바로 뉴욕 헤지펀드 QVT파이낸셜에 취업했고 초고속 승진, 28세에 파트너가 됐다.
로이반트는 매년 한번씩 국내 업체와 수천억원 규모의 기술도입 계약을 맺어 국내에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2017년 한올바이오파마와 5500억원 규모의 항체신약 기술 도입계약을 맺었고, 2018년에는 인트론바이오로부터 슈퍼박테리아 바이오신약 기술을 7500억원(이후 1조2000억원으로 확대)에 도입했다. 작년 SK바이오팜이 유럽지역에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기술권리를 6000억원에 넘겨주는 계약을 맺은 곳 역시 로이반트 계열사다.
비벡 라마스와미 CEO는 상업화 가능성이 있는 신약 물질의 권리를 인수해 단기간에 개발, 상업화하기 위한 독특한 사업 모델을 고안해냈다. 철저히 수익화에 초점을 맞췄다. 로이반트가 지주사 역할을 하며 현재까지 약 스무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두고 각 자회사마다 개발 기술의 종류를 다르게 분포시킨다.
국내 바이오벤처 대표들의 상당수가 관련분야의 전공자 혹은 학계 및 의료계 인사로 구성돼 있다. 바이오 제약계 출신이 바이오업체를 창업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에 랭크된 바이오벤처 CEO 중에는 제약 바이오 및 의료계 출신이 아닌 이들이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 바이오 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주식시장에서 핫한 바이오벤처들의 경우 바이오 분야 비 전공자 대표들이 회사를 창업했거나 오너로서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신약개발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자본시장과 친숙하고 주주 관리에 능숙한 CEO들이 주식시장에서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또 "관련 분야를 전공했거나 의료 및 학계 유명한 교수 출신 대표들 중에서도 금융 투자시장을 잘 알고 사업적 수완이 뛰어난 이들이 자본시장의 관심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코스닥 제약바이오 분야 시가총액 5위권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1위~5위(2월 21일 기준) 중 1곳을 빼고 전부 대표가 비(非)바이오 출신이 대표인 기업이 포진해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1위), 에이치엘비(2위), 메디톡스(3위), 휴젤(4위), 셀트리온제약(5위) 중 메디톡스의 정현호 대표만 서울대 미생물학과 출신이다. 나머지는 산업공학, 정치외교, 법학, 경제, 회계학 출신이며 주요 이력 또한 제약 사업을 하지 않는 일반 대기업체나 은행에 쏠려있다.
시총 9조2000억원대, 1조4000억원대의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은 그룹 창업주이자 각 업체 사내이사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뿐 아니라 현 대표이사들의 출신 이력도 '바이오'와는 거리가 멀다.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경영학 석사를 전공한 서정진 회장은 삼성전기를 거쳐 대우그룹으로 이동, 대우가 해체되기 전까지 대우자동차 임원으로 재직한 '대우맨'이다.
그는 '바이오'는 문외한이었지만 자금조달의 숱한 위기를 겪어내며 개척자 정신으로 바이오사업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수천억원을 들여 생산공장을 지었고 결국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업체를 일궈냈다.
서 회장과 함께 초기 셀트리온을 일군 창업 공신인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는 서강대 정치외교학 출신으로 역시 대우맨이다. 셀트리온 합류 전 대우자동차 전략기획팀장으로 재직했다. 셀트리온제약 대표인 서정수 대표는 서 회장의 동생이며 GS건설 상무를 지내다 2012년 셀트리온에 입사했다. 셀트리온의 제조 부문에 힘을 보탰으며 2014년 셀트리온제약 사장에 올랐다.
서정진 회장 만큼이나 바이오에 문외한이었던 이가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이다. 진양곤 회장은 원광대 법학, 연세대 경제학 석사를 졸업하고 부산은행, 평화은행 등을 거치며 증권금융업계에 몸 담아온 인사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경영 자산관리 컨설턴트를 거쳐 M&A업계에 발을 내밀었다.
구명정 제조업체 현대라이프보트를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에이치엘비 전신 이노GDN을 인수, 미국 LSK바이오파트너스 투자로 이어가며 시총 각각 4조원대, 1조원대의 에이치엘비와 에이치엘비생명과학 등 여러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시총 4위인 휴젤도 경제, 경영 전공자인 기업가 출신 손지훈 대표가 지휘를 맡고 있다. 과거 휴젤의 공동 창업주들은 의사 출신으로 휴젤의 주력 사업과 연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베인케피탈에 매각된 후로는 전문 경영인 체제에 돌입했다. 손 대표는 국내외 제약사를 거치며 해외사업 분야에서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입증받은 인물이다. 미국 BMS를 거쳐 동아제약 글로벌사업 전무, 박스터코리아 대표, 동화약품 대표를 역임했다.
시총 20위권으로 넓혀봐도 비전공자 출신 CEO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내이사로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창업주 혹은 오너 경영자와 대표이사를 포함한 20위권 업체 수장들 27명(중복 있음) 중 14명이 바이오 비전공자로 나타난다.
작년 말 폰탄수술 환자 치료제로 글로벌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한 메지온의 박동현 대표는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스탠포드대 MBA를 졸업한 경영 전문가로 특히나 사업적 결단력, 수완이 좋은 것으로 평이 나있다. 그는 과거 동아제약의 사외이사를 맡아오다 의약품 기술수출에 관심을 가졌으며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신약물질을 양수받는 형태로 메지온 설립에 참여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가 메지온 지분을 매각하면서 박 대표가 최대주주에 올라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최근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주목받고 있는 삼천당제약의 윤대인 대표이사 회장, 전인석 대표이사 사장도 경영학도로 해외 대학에서 MBA를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온 이들이다. 양용진 코미팜 대표이사 회장이나 권기범 동국제약 부회장,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공동대표, 오상훈 차바이오텍 대표 등도 법학이나 경제 경영학을 전공한 수장들이다.
물론 비바이오 출신 바이오 수장들 가운데 정도(正道)를 걷지 않고 주가 부양 목적을 위해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 만들어내는 '거품'에 대한 주의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다만 최소 십년 이상 걸리는 기간동안 대규모 R&D 자금이 필요한 신약개발 업체들이 지금처럼 관심을 받고 자금도 조달받는 배경에는 '거품'의 긍정적 영향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바이오 투자사 대표는 "신약개발 특성상 해당 분야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전공 지식도 중요하지만 비용을 감내하고 상업화를 이뤄 수익을 내는 것이 관건"이라며 "사업모델을 만들고 지휘하는 경영자의 통찰력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또 "바이오벤처 창업자들이 상장 후 경영과 연구개발을 분리하는 추세이므로 구조적으로도 비바이오 출신 CEO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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