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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현다이 사람들처럼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3-12 04:00:41

이 기사는 2020년 03월 12일 04: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7년에 사우디 주베일항만 공사장에서 이른바 3.13.사건이라고 불리는 대형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임금에 불만을 품고 태업을 하던 덤프 트럭 운전기사를 현대 직원이 폭행한 것이 발단이 되어 폭동이 일어났다. 사태가 악화되자 사우디 정부에서 군부대를 출동시키기까지 했다. 아산이 나서서 협상을 타결지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우디와 우리 양국 정부는 강경했다. 과격한 행동을 했던 기능공 20명과 현대 직원 5명이 귀국 조치 되었다.

이 모든 일은 프로젝트를 공기 내에 완성하려는 회사 측의 푸시와 근로자들의 강행군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목숨을 걸어가며 지독하게 일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두가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여기는 중동의 열사를 ”비가 안 와서 작업 시간이 많이 확보되는“ 유리한 여건으로 생각했던 것이 그 시절 한국인의 정신이었다.

주베일항에서 일했던 한 외국회사(브라운 앤드 루트)의 영국인 크레인 기사가 이상한 시를 한 편 지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아산은 이 시를 회고록에서 소개하고 있다(이 땅에 태어나서, 324).

그들은 우리가 성낼 때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가 지쳤을 때 벌떡 일어서며,
우리가 잠잘 때 소란 법석을 떠네.
어느 ‘브라운 앤 루트’ 사람의 묘비명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네.
여기 잠들어 있는 사람은 천하의 바보.
‘현다이‘ 사람들과 어울려
’현다이‘ 사람들처럼 일하다가
스스로 죽음을 불렀다.

이 노력으로 1977년 현대건설은 매출액 기준 석유공사에 이어 2위 기업이되었다(5360억 원). 법인세 자납 1위 기업이기도 했다(141억 원). 매출 4위였던 현대중공업이 법인세 자납 2위 기업이었다. 매출 3위는 한국전력이었고 포항제철이 6위, 삼성물산이 7위였다. 같은 해 아산은 자신이 보유한 현대건설 주식의 50%를 출연해서 아산사회복지재단도 설립했다. 배당금으로 사회복지사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그 주식의 가치는 500억 원이었는데 정부의 1년 사회복지예산 195억3400만 원보다 훨씬 큰 액수였다.

현대는 노조가 강성이기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 전통이 지금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이어져 내려온다. 아산은 1986년 후반부터 이른바 ’3저‘의 효과가 조선산업에서도 발생했는데 1987년 민주화 선언으로 그 효과가 1년 정도밖에 발휘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노사분규가 심해져 납기 지연과 임금 상승, 제조 원가의 상승이 발생했고 1986년에 74%를 넘었던 현대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1989년에는 10%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아산이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아산은 기술자, 중간관리자, 기능공을 항상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임금의 인상도 이윤 확대로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산의 노사문제에 대한 시각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근로자는 어느 수준까지는 임금을 보장받아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법이다. 임금을 높이는 것이 채산성을 떨어뜨리는 것과 직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느 선까지는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채산성도 높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임금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하려 하지 않는 법이다. 교육을 받았건 못 받았건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 필요성, 실력을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 평가하며 살기 때문이다.“(321~322)

포스텍의 송호근 교수는 과거 현대의 노사관계를 ’긍정적 담합‘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 합심의 시대는 1987년 민주화로 종결되고 경영과 노동의 분절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소모적인 대립의 시기가 계속되어 왔다(가 보지 않은 길, 48~5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현대차는 글로벌 5위의 위치에 올랐다. 노사가 최선을 다해 힘을 모은 결과다. 특히 현대차는 1999년까지 10위권 밖에 있다가 2000년부터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2008년에 처음 5위권에 진입했었고 2009년에는 마침내 포드를 추월했다. ’품질경영‘으로 불리는 정몽구 회장의 기술 리더십이 이른바 대립의 시기에도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조선산업은 스마트 조선을 지향하며 자동차산업은 플랫폼산업으로 변모해 간다. 현대차의 경쟁사들은 공격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면서 미래차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고용안정위원회 자문위원회도 오는 2025년에는 국내 자동차 제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지금보다 최대 4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변되는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조립 부문에서의 부가가치가 크게 감소할 전망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규채용을 중단할 수는 없다. 신입사원이 없는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 새 시대에 맞는 노사관계의 혁신적 재편이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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