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27일 04: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간은 한정된 지역에서만 살 수가 없다. 일단 생존에 불리하고 그다음으로는 재미가 없다. 인류의 문명은 길을 통해 전파되어 왔고 경제활동과 사회적 교류도 길을 통했다. 길을 가다가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았고 험한 산이 나오면 터널을 뚫었다. 두 바다와 두 강줄기를 잇는 운하를 건설했고 바다를 넘어 다니는 배가 사람과 물건을 내리고 싣는 항만을 만들었다. 이 모든 인프라 건설을 사업으로 하는 회사가 건설회사다.건설회사는 물길을 막아 전기를 생산하는 댐과 발전소를 짓는다. 농사에 필요한 저수지와 관개시설도 건설회사 담당이다. 주거용 주택과 사무용 빌딩과 공장, 호텔, 그리고 학교와 병원도 짓는다. 건축물은 인류문화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가 해외 관광을 가면 대개 그 나라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온다.
현대건설 70년사의 제목은 ’열다 짓다 그리고 잇다‘다. 2017년 5월에 모두 3권으로 펴냈는데 현대건설 홈페이지에 PDF로 모두 게시되어 있다. 여기서 ’열다‘는 기업문화, ’짓다‘는 프로젝트, ’잇다‘는 회사의 통사를 비유한다. 두 번째 책인 짓다가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규정지을 것이다.
고령교 공사
현대건설은 1947년 5월 25일 출범했다. 한국전쟁 동안 부산에서 미 8군 발주공사를 주력 사업으로 착실히 성장한 현대건설은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얼마 전인 1953년 4월에 아산의 표현대로 ‘악몽의’ 고령교 복구공사를 시작했다. 고령교는 대구와 거창을 잇는 다리다. 당시 백운산, 덕유산, 지리산 등지에서 활동한 공비 토벌에 필요한 공사였다. 옆에 성산대교가 새로 지어져서 고령교는 통행 제한 다리로 잔존하다가 2000년에 철거되었다. 인터넷에는 철거회사가 찍은 철거작업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 공사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산은 “사업을 시작해서 이날까지 그만큼 혹독한 시련은 없었다”고 회고한다(이 땅에 태어나서, 64). 아산이 사업가로서 보낸 일생을 돌아보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기 때문에 이 회고는 고령교 공사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 공사는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데서 오는 기술적 어려움도 컸지만 현대건설이 빈약한 장비로 시작했다는 점과 물가가 예상 밖으로 폭등한 점도 문제였다. 공사비는 이미 정액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공사 마감 무렵에는 공사 시작 때보다 물가 무려 100배 정도 뛰어있었다. 즉, 자재비용과 노임이 비슷하게 높아졌다고 보면 된다. 어느 사업자도 이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파업과 빚 독촉에 시달렸다. 아산은 당시 상황을 “지옥이었다”고 한다(위의 책, 66).
그러나 아산은 끝까지 회사를 접고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신용 때문이다. 후일 성우그룹 명예회장 동생 정순영과 후일 서한그룹 명예회장 매제 김영주의 집을 처분했다. 혈육도 아닌 창업 동지 한 사람도(최기호) 집을 팔았다. 아산은 제사 지낼 집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집이 아닌 자동차 수리공장 땅을 팔았다. 월 18% 고리로 돈도 있는 대로 끌어왔다.
그렇게 해서 결국 1955년 5월에 공사를 끝냈다. 당연히 엄청난 적자 프로젝트로 남았다. 아산의 동생과 매제는 셋집 얻을 돈도 없어져서 서울 초동 개천의 다리 옆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미국 유학 중이었던 후일 현대차 회장 동생 정세영은 학비가 끊어져 고생했다.
이 고령교 공사 때문에 현대건설은 오랫동안 채무에 시달렸다. 다행히 1950년 7월에 설립했던 현대상운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현대상운은 부산의 부산진역 부근에 외자창고를 가지고 정부의 보관업무를 대행했던 회사다. 보관료를 받으면 현대건설 운용에 보탰다.
고령교 공사는 현대건설에 치명타였지만 신용을 높이 평가받는 계기도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산 자신이 뼈아픈 시련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평생의 자산이 된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많은 것을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시멘트
현대건설은 고령교의 악몽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다가 1957년 9월에 착공되었던 한강인도교 복구공사 수주를 계기로 정상을 회복한다.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는 전후 최대의 단일 공사였다. 40%의 이익을 냈다. 그리고 1965년에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1966년 베트남 캄란만 준설공사, 방오이 주택건설공사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고 그 자금이 현대자동차의 확장과 단양시멘트 공장 완성에 사용되었다.
석회석에서 만들어지는 시멘트(양회)는 이집트의 대피라미드를 짓는 데 사용되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역사가 매우 오래된 건설재료다. 로마제국은 시멘트 제조기술을 발전시켜 판테온, 콜로세움, 수도교 등 위대한 건설 업적을 남겼다. 1867년에 프랑스에서 시멘트를 주재료로 하는 콘크리트가 발명되면서 건설의 역사는 크게 진전되었다.
아산은 시멘트를 ‘건설 공사의 쌀’이라고 불렀다. 시멘트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건설의 생명인 공기를 맞추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아산은 1957년에 연산 20만 톤 규모 시멘트공장 설립 계획을 세웠다. 현대건설 안에 시멘트사업부를 설치해서 추진했다. 그러나 기존 업체들의 방해가 있었고 그에 따라 정부도 기존 공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만 내놓을 뿐이었다.
정밀한 수요조사를 통해 1960년대 초에는 120만 톤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냈다. 그러자 그제서야 정부도 공장 설립을 허가했다. 정권이 바뀌고 1962년에 AID 차관 425만 달러를 정부보증으로 들여와 단양시멘트가 탄생했다. 단양시멘트 공장 건설 작업은 ‘현대건설의 3·1운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아산은 이 공장 건설에 전력 질주하느라 그때 ‘호랑이’ 별명을 얻었다. 1964년 6월에 준공을 보았다. 현대는 최소한 시멘트 걱정은 없이 사업을 벌일 수가 있게 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도 단양시멘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양시멘트는 1970년 1월에 현대시멘트로 독립했다. 고령교 공사 때 집을 팔았던 정순영 명예회장이 초대 사장을 맡았다. 현대시멘트는 1975년 상장회사가 되고 현대종합금속을 세우며 사업을 계속 확장하다가 1980년에 정순영 사장이 현대에서 분리시켜 독립해 나왔다. 정순영은 그 후 자동차 부품업체 성우오토모티브를 비롯, 성우종합레저산업, 성우종합건설, 성우전자를 설립해 성우그룹을 일구었다.
건설은 종합 프로젝트
현대건설 70년사 제2권에는 현대건설이 국내외에서 완수한 프로젝트가 다 소개되어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당대 최대 프로젝트였고 청와대와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현대건설의 작품이다. 정부 예산의 50%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인 1976~1979년 사우디 주베일항만 공사는 중동 붐을 일으켜 한국경제가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아산은 이렇게 말한다. “건설업처럼 중요하고도 또 건설업처럼 힘든 업종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공사 수주부터가 말할 수 없이 치열한 경쟁이다... 한 현장의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적 차이를 습득, 극복해야 한다. 대인 관계, 관공서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회사에 장래를 건 사람들도 아닌, 그 일이 끝나면 각각 뿔뿔이 흩어지고 말 기능공이나 인부들한테 의욕을 불어넣어가면서 큰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무리짓는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항만 공사, 댐 공사, 화학 단지 조성 공사, 공장 건설, 이 모든 일들은 선이 굵으면서도 한편으로 정밀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나는 건설업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모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는 업종이며, 해외 건설 책임을 훌륭하게 완수한 사람한테는 어떤 일을 맡겨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우리 그룹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았던 사람, 맡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현대건설’ 현장 출신이다”(129).
요즘 AI(인공지능), 디지털화 때문에 공학과 기술이 온통 그쪽에 집중되어 있다. 고부가가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 생활과 생명, 그리고 산업에 필수적인 것은 건설 같은 ‘구세대’ 분야다. 미국 버클리공대는 실리콘밸리 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미국 서부의 근대화 노력에 필수적인 동반자였다고 자부한다. 캘리포니아의 농업 발달에 필요했던 관개시설, 1936년 완공된 후버 댐, 1937년에 완공된 금문교 모두 버클리공대 작품이라고 자랑한다. 컴퓨터에 집중하느라 건설 분야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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