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 비상경영]"향후 10년이 달렸다" 성장전략 '급브레이크'①정지선 회장 진두지휘, 계열사별 위기극복 플랜 준비…체질전환 기점 전망
최은진 기자공개 2020-03-30 07:30:08
[편집자주]
현대백화점그룹이 유통업계 침체에 더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까지 닥친 데 따라 전례 없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감하기로 유명한 현대백화점그룹이 이례적으로 각 계열사별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성장전략의 재조정이나 자산매각 등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성장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3월 25일 15: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때 현대백화점그룹은 세간으로부터 '停止線(정지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변화에 보수적이고 느리다는 의미다. 반대로 한 우물만 파면서 대형 유통사 입지를 굳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실제 국내 빅(Big)3 유통사 가운데 유일하게 백화점 단일채널전략만으로 성장한 저력을 보여줬다.유통공룡들이 침체기를 관통하는 전략으로 '구조조정' 카드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대백화점그룹은 '혁신성장 전략'이라는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였다. 2020년이 향후 10년의 성장을 그리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의 분위기가 단 몇 달사이에 확 바꿨다. 총수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각 계열사들은 기민하게 위기극복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간의 부침에도 큰 동요가 없었던 현대백화점그룹이 이번 만큼은 '다른상황'이라고 판단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금 닥친 위기가 향후 10년의 성장전략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현대백화점그룹에게조차 공포감을 안겼다.
◇신년사서 '비상의 일상화' 첫 화두…혁신성장으로 타개하자 '주문'
"비상(非常)이 일상이 됐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비상이라는 말을 썼다. 2014년부터 꾸준하게 '위기'라는 말을 언급하며 변화를 주문했지만 '비상'이라는 단어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는 경쟁사와 같은 구조조정이 아닌 '혁신성장'을 내세웠다. 그동안 줄곧 '지속성장'을 강조했지만 올 들어서는 '혁신성장'이라는 말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유형의 전략을 주문했다. 정 회장이 강조하는 '다른 행동(Do different)' 전략에서 비롯된 발상이었다.
'느리고 보수적이지만 내 갈 길 간다'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체질에 비춰볼 때 2020년은 앞으로 10년의 비전을 그리고 계획하는 출발점과도 같았다.
지난 10년간 현대백화점그룹은 자산총액 기준 123% 성장했고 매출액은 164% 늘었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두자릿수 성장률은 한자릿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사실상 수익성 측면에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년의 전략을 폐기하고 새로운 혁신전략을 세우는 건 생존을 위한 불가피 한 결단과도 같다.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고 비용감축에 허리띠를 졸라맬 때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과 아울렛 등에 적극 투자하는 확장정책을 구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현대백화점그룹은 투자활동에 5020억원을 지출했다. 빅3 백화점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 여기에 포함되진 않으나 현대백화점 면세점 출자에 1200억원을 썼다. 올해 역시 현대백화점 면세점에 2000억원을 투자하며 확장정책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현대백화점그룹 고위 관계자는 "수익성에 대한 고심이 수년 전부터 있었고 그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는데, 올해 이를 본격적으로 전략화 해 펼칠 원년이라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10년을 시작하는 해라는 점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단일전략에 불안 엄습, 성장전략 훼손 우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가 터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인해 경제가 사실상 셧다운 상황에 놓였고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는 생필품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매 패러다임 자체가 대면접촉에서 비대면접촉으로 단박에 변화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백화점·아울렛·면세점 등 유사전략의 연장선에서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사업을 펼치던 현대백화점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한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다. 현대백화점그룹 고위임원들 역시 경쟁사와 다르게 '백화점 단일전략'이라는 점에서 위기상황의 배경을 찾는다.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를 꿰하지 않은 우직함이 남들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 나름대로 선방하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전략의 방향성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일고 있다는 의미로 플이된다.
앞선 고위 관계자는 "타사와 같이 마트나 슈퍼 이런게 있는 게 아니라 백화점 단일 전략으로 성장한 터라 강점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을 때는 또 불안한 측면이 있다"며 "일본이나 미국 등 글로벌 유통사들이 오프라인 전략을 없애고 있는 상황에서 백화점 단일전략인 현대백화점그룹이 살아나갈 방향은 어디일까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비상경영'이라는 말을 임원들에게 직접 강조하면서 긴급하게 관련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계열사에 각각의 플랜별 위기극복 시나리오를 주문했다. 정 회장이 매일 출근하며 비상경영 체제를 직접 진두지휘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실적만 놓고 볼 때 현대백화점그룹은 경쟁사 대비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이마트의 실적이 반토막이 났고 롯데쇼핑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호한 백화점을 제외하곤 슈퍼마켓·대형마트·전문점 등이 전부 실적 악화일로를 걸으며 3년 내내 적자를 보고 있다. 반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연결기준 매출액이 18% 늘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18%, 15.5% 감소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불안감은 당장의 실적이 아닌 '성장전략' 자체의 훼손을 우려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쟁사처럼 당장 점포 구조조정이나 인력 감축 등을 논하지 않는 것도 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번 비상경영 체제가 현대백화점그룹의 혁신 성장전략을 다시 세우는 트리거(Trigger)가 될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대로 가는게 맞나'라는 일종의 브레이크를 건 것인 만큼 기존 성장전략을 재검토 할 것이란 평가다. 면세점 확장정책이나 오프라인 점포 출점전략, 온라인몰 전략 등 현대백화점그룹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안들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수년 전부터 논의됐던 현대HCN 매각이나 지방 일부점포의 유동화 가능성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자산 매각은 오래 전부터 논의됐으나 시의적절성이나 매수자 발굴 등의 문제로 인해 유보됐던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번 비상경영체제를 계기로 각 계열사들이 위기극복 플랜을 세우고 성장전략을 재조정하면서 다시 화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현대백화점그룹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후 어떻게 수익성을 강화해 나갈 지 고민해야 하는 단계"라며 "잘 변화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게 업계 평가지만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DNA를 지닌만큼 이번 비상경영 역시 그의 일환으로 해석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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