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키코 배상 거절…힘빠진 금감원 '정부 입장 따랐을뿐' 진화, 추가 조치도 어려워…6개월간 진통 싱겁게 마무리
김장환 기자공개 2020-06-10 11:15:16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8일 15: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한은행과 하나·대구은행도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배상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금융감독원이 난처해졌다. '사적 화해'란 근거까지 마련해줬지만 은행들의 입장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금감원 측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은행들에 권고한 키코 배상안 수용 거절 의사를 처음 밝힌 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다. 법률자문을 거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부 입장을 정했지만 발표는 뒤늦게 했다. 국책은행이 조기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시중은행도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금감원이 발표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의사 결정 발표를 미룬 사이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은행이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신한은행(150억원)에 이어 가장 많은 액수였던 42억원대 배상 권고를 받은 우리은행은 지난 2월 27일 배상금을 전액 지급 완료했다. 손태승 회장의 연임 결정을 앞둔 시기였다.
우리은행의 결정은 윤 원장에게도 힘을 실어주었다. 대법원이 면죄부를 줬던 키코 배상을 은행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금감원은 전례없는 성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란 안팎의 판단이었다. 이전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키코 배상안을 전면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사가 바로 2018년 5월 부임한 윤 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도 키코 배상을 주도한 윤 원장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신한·하나·대구은행 등 나머지 권고를 받은 은행들은 오랜 기간 뚜렷한 결정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은행의 배상과 산업은행의 거절 이후로도 장기간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 은행권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결정이 이미 나온 사안이어서 의사결정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금융당국의 인사 기류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키코 배상 결정을 지속해 미룬 건 배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이 내부적으로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지만 당국의 인사 등 움직임을 고려해 사실상 발표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며 "신한은행이 (5일 오전) 이사회를 거쳐 배상 거절 결정을 내리면서 나머지 은행들도 오후에 이사회를 열고 이미 결정했던 사안을 발표만 하는 수순이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은 신한·하나·대구은행이 모두 '수용 불가' 결정을 내리자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키코 배상이 마치 윤 원장 스스로 주도적으로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사례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사실 키코 배상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금융 3대 적폐로 삼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사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했던 사안이지 금감원장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단행했던 일이 아니다"며 "윤석헌 원장이 마치 모든 걸 좌지우지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사적 화해'란 법적 돌파구까지 마련해줬음에도 은행권이 이를 따라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금감원은 키코와 라임 문제와 관련된 배상을 '사적 화해' 수단으로서 하게 되면 법적으로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은행들은 감독당국의 요청에 반하는 결정을 내놓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금감원과 피감기구인 은행들이 키코 사태로 반목하는 모습을 보이자 윤 원장의 임기를 둘러싼 말들도 다시 커지는 양상이다. 4월 총선 후 예견됐던 개각에 맞춰 금융당국 수장들도 교체가 거론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미뤄왔던 부원장 인사까지 마무리하면서 윤 원장의 교체설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이 처음 부임했을 때는 금융권 적폐 청산에 치중해야 하는 상황이 맞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 기류도 완전히 뒤바뀐 상태로 봐야 한다"며 "은행들에 민생자금 지원 등을 적극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고 키코 배상 등 문제를 지속해 끌고 가며 압박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키코 배상을 두고 더 이상 은행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적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 근거로만 보면 은행이 이를 배상해야 할 명확한 사유는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측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도 취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윤 원장이 들어서며 큰 소리를 냈던 키코 배상 문제가 예상보다 싱거운 결과로 끝을 맺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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