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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신세계 오너가의 '그림자 경영'직책은 있는데 이사회 등기 '전무'…'장기성장 발판 vs 책임 회피'

정미형 기자공개 2020-06-25 13:14:57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22일 11:3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인 분류가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이다. 오너 유무에 따라 오너가 있으면 '소유경영', 오너 없이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면 '전문경영'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소유경영 체제다. 동일한 소유경영기업도 지배주주의 경영 참여 방식에 따라 다시 지배주주가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는 '소유직접경영'과 지배주주가 최고경영자를 감독하는 것에 머무르는 '소유간접경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너 3세 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삼성전자가 전자(前者) 그리고 스웨덴 재벌가인 발렌베리그룹이 후자(後者)의 대표적인 예다.

소유경영기업이지만 이 두 가지로 구분되지 않는 기업도 있다. 바로 신세계그룹이다. 신세계그룹은 재계에서도 독특한 경영체제로 손꼽힌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을 필두로 그의 자녀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모두 직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있다. 동시에 오너일가 모두 어느 계열사에도 이사회 내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다.

이런 특징 탓에 신세계그룹을 소유간접경영 기업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소유직접경영 기업에 가깝다.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 직접 나서진 않지만, 그룹 내에서 직책을 맡으며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림은 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영국 군주의 원칙과 유사하다.

신세계그룹 오너일가.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왼쪽부터)

◇월마트 오너가, 직접경영 대신 CEO 감시 이사 역할

세계 최대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월마트는 신세계그룹과 여러모로 유사한 기업이다. 월마트라는 할인소매점을 운영하고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유통 기업인데다가 가족 경영 기업의 대표주자다. 월마트 지분 48.7%를 보유한 월튼 엔터프라이즈(Walton Enterprises)가 가족 소유 투자회사다.

신세계그룹처럼 전문경영인을 발탁해 경영을 맡기고 있다는 점도 같다. 1962년 시작된 월마트는 창업자인 샘 월튼 이후 오너일가가 CEO를 맡고 있지 않다. 2~4대 CEO도 그랬고, 현재 5대 CEO를 맡고 있는 맥 밀론 대표도 고등학교 때부터 월마트에서 일해 승진한 케이스다. 오너 일가 중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창업자 샘 월튼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현재 차남이 사고사로 생을 달리한 이후 2남 1녀가 남아있다.

대신 지배구조 형태는 조금 다르다. 월튼 패밀리는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는 대신 이사회 주도권을 쥐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완벽하게 분리된 소유경영기업의 예다.

월마트의 초대 이사회 의장은 창업자인 샘 월튼이었고, 이후 장남인 롭스 월튼이 23년 동안 이사회 의장 자리를 지켰다. 현재는 롭스 월튼의 사위인 그렉 페너가 3대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되 오너일가가 이사회를 통해 경영을 감시·감독하고 견제하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지배구조 덕에 월마트는 지금껏 살아남아 세계 최대 유통업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월마트와 비슷한 시기 출범해 30여 년간 미국 할인소매점 선두자리를 지켰던 K마트를 월마트가 제치고 살아남은 것은 단적인 예다. K마트는 창업자 사망 이후 전문경영체제를 택했다. 그러나 경영진이 재임 기간에 단기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뿐 장기적인 안목을 통한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서며 경쟁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소유·전문 경영체제와 기업의 장기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경영체제인 K마트는 소유경영체제인 월마트에 비해 경영진 교체가 빈번해 전략의 일관성이 떨어졌고 이는 경영성과 부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회장 직속 조직 '전략실' 통해 그룹 컨트롤

신세계그룹이 지금의 체제를 구축한 것은 1999년부터다. 신세계그룹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5녀 이 회장에게로 상속되어 1991년부터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영됐다. 공식적으로 분리된 것은 1997년으로, 이 회장은 1998년 말 신세계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은 이듬해인 1999년부터 전문경영인을 들이며 당시 부사장으로 있던 구학서 전 신세계 회장을 총사령탑에 앉혔다.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전문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는 신뢰 경영을 펼쳤듯 이 회장도 부친의 경영 스타일을 닮으려고 애썼다.

대신 신세계그룹 내 전략실을 뒀다. 전략실은 이 회장 직속 조직으로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다. 전략실은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경영지원실이 모태다. 경영지원실→경영전략실→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전략실은 오너일가와 그룹을 이어주는 일종의 정예부대다. 오너일가가 계열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대신 전략실을 통해 그룹 전체를 움직인다. 계열사 업무 조율과 지원은 물론 그룹의 대형 M&A도 전략실 주도로 이뤄져 왔다.

전략실은 그룹 엘리트 집단의 산실로, 그룹 최장수 CEO로 꼽히는 구학서 전 회장과 김해성 전 부회장을 비롯해 임병선 까사미아 대표, 한채양 신세계조선호텔 대표 등도 거쳐 갔다.

정 부회장도 그룹 전략실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 부회장은 한국후지쯔 유통사업부에서 직장생활 첫발을 내디딘 뒤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해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상무,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부회장을 지낸 뒤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됐다.

◇'책임경영' 논란 극복할까

신세계그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핵심 인물은 누가 뭐래도 오너일가다. 계열사가 42곳에 이르도록 몸집을 불리는 동안 오너일가의 의지와 의사결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당시 신세계그룹이 사업 구조 재편에 대대적인 메스를 들이대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소유경영체제 덕분이다. 당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종합금융과 카드사업 등 비유통 사업을 과감하게 쳐냈다. 또한 창고형 할인점 프라이스클럽(현 코스트코홀세일)을 매각해 마련한 1억 달러로 전국 주요 상권의 할인점 부지를 대거 매입해 이마트 사업에 나섰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업 경영 환경 속에서 오너일가의 선제적인 판단과 빠른 추진력이 득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오너일가의 '책임경영'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신세계 오너일가는 이 회장은 물론 정 부회장, 정 총괄사장 모두 등기임원에 올라 있는 계열사가 한 곳도 없다. 국내 많은 기업이 책임 경영을 이유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직위를 분리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의 신세계그룹 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그룹 소속 계열사 중에서 총수가 임원으로 등재된 계열사가 한 곳도 없는 것은 지배구조의 책임경영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총수일가의 임원등재를 통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을 지낸 조명현 고려대학교 교수는 "보통 오너경영은 대표이사에 오른다든지 이사회에 들어와 있는 형식으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간다"며 "완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기 위해선 오너일가가 그룹 내 맡은 직위를 내려놓아야지 현재로선 책임을 지지 않는 소유경영체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진 않으나 대주주로서 무한 책임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다"며 누구보다 기업 성장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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