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재벌시스템]'소유+경영' 향한 편견...히든챔피언이 웃는다④재계 대부분 '소유+경영' 결합 체제, '오너경영-전문경영' 한쪽 쏠림 경계
김경태 기자/ 구태우 기자공개 2020-05-27 07:47:0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2일 09: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플렉시(Flexi)라는 기업은 전세계 애견 자동줄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보이는 독일 기업이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경영이론가인 헤르만 지몬이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s of the 21st Century)'으로 꼽은 기업 중 한 곳이다.이 기업은 가족들이 경영한다. 지분은 오너 가족들이 모두 갖고 있다. 기업의 정보를 철저하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플렉시는 기업공개(IPO)의 필요성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너 가족들도 IPO를 극도로 꺼린다.
이들은 기업의 정체를 숨기는데 익숙하다. 플렉시의 소유주는 일반인이 기업의 정보를 모르는 것에 안도하고 만족한다. 급기야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업의 내부를 모르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기 까지 한다. 그럼에도 플렉시는 전세계 애견 자동줄 시장을 석권했다.
플렉시의 본사는 도시가 아닌 시골 한적한 곳에 있다. 그럼에도 전세계 91개국에 진출했다. 오너 가족들은 매우 검소하다. 능력있는 오너 경영자는 직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한 임직원의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바더(Baader), 매킬레니(Mcllhenny), 3B사이언티픽(3B Scientific), 테트라(Tetra), 하나마쓰포토닉스(Harnamatsu Photonics), 페츨(Petzl), 울박(Ulvac) 등 그동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기업들도 모두 지몬이 꼽은 히든챔피언 기업이다. 대부분 플렉시와 비슷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가족 기업이 모두 병든 기업은 아니다
'가족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병든 기업이 아니다. 가족 경영의 폐해가 특히 많다고 지적되는 곳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인 한국과 미국, 영국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트롬페나스 햄든터너 컨설팅'의 공동 창립자가 쓴 저서 '의식있는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미래를 위한 9가지 상상'에 따르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도입한 국가의 많은 기업들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자사 직원 및 납품업체, 소비자와 상생하는 것보다 주주의 이익이 우선이다. 그러나 스웨덴과 독일 등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퍼진 유럽 국가의 기업은 북미식 기업과 차별화된 발전 경로를 밟았다.
삼성이 본받고자 했던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도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 가문과 닮은 점이 꽤 많다. 발렌베리그룹은 5대 째 경영권을 승계했다. 현재 사촌 간 금융과 제조업을 나누어 맡고 있다.
이 가문의 좌우명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법규를 위반하거나 탈세를 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적도 없다. 스웨덴은 이익의 21.4%를 법인세로 납부한다. 법인세율은 과거 85%에 달했는데 점차 낮아졌다. 발렌베리 가문은 매년 수천억원을 사회에 기부 등을 통해 환원한다.
발렌베리, 플렉시, 바더, 울박과 같은 기업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국민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지지하고 존중한다. 이유는 기업 소유주의 헌신적인 사회 환원, 깨끗한 직업관, 검소한 생활 등에 있었지 지배구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이 결합한 지배구조가 문제가 되는 때는 오너 가족이 '소유'를 남용했을 때다. 기업을 소유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유와 경영'의 저자 김화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가족경영기업이 사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김 교수는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Peugeot)의 가족구성원은 모든 수익을 회사에 재투자한다. 회사가 번 돈으로 생활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가족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모두 일을 해야 하는데, 회사 안에서 일하고 싶고 능력이 받쳐주면 좋은 자리가 보장됐다. 회사는 가족들만 참여하는 파트너십이 지배했다."
◇'전문경영인 vs 오너경영인', 누가 경영해야 하는가
소유와 경영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또 있다. 전문경영인이 오너경영인보다 무조건 더 잘 경영하리란 생각이다.
경영 체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기업의 지배력을 보유한 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소유경영 체제'가 있고,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이끄는 '전문경영 체제'가 있다. 여러 학자들마다 분류에 있어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다.
다만 큰 틀에서 보면 소유경영 체제는 지배주주가 소유권(Ownership)과 경영권(Management)을 모두 가진다. 전문경영 체제는 지배주주가 없거나, 지배주주가 존재해 소유권을 가진다. 그리고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이 가지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는 익히 알려져 있듯 전문경영 체제가 우세하다. 창업주가 기업을 만들고 키우는 과정에서는 소유경영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 체제가 2세까지 이어지기보다 능력을 검증받은 외부 실력자가 회사를 경영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창업주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 이어 팀 쿡(Tim Cook)이 경영하는 애플이 있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이 오너경영인보다 늘 성공적 경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 우리나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너경영인이 작고한 후 경영을 맡은 전문경영인은 무리한 M&A에 나서다 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이 외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다 참변을 당했던 기업 사례도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KT,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공단이다.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로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의 회장을 맡는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수조원대의 부실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당시 조선사들은 국제유가가 곤두박질 치면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받아 재무구조를 개선 중이었다. 대규모 손실로 인한 여론의 부담을 의식해, 분식회계를 감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와 KT는 정경 유착으로 번번이 논란이 됐다. 포스코는 권오준 전 회장 재임 중 비선실세였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다. 이후 권 전 회장은 2018년 임기를 남기고 돌연 사임했다. 이석채 KT 전 회장은 야당 의원 자녀의 채용비리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렇듯 전문경영인은 회사 안팎의 이해관계 집단이 행사하는 압력에 취약하다. 전문경영인이 '외풍'에 흔들려 불법을 저지른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대기업집단, 대부분 소유·경영 결합 체제 위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이 국내 재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대기업집단 대부분이 소유와 경영이 결합된 형태로 기업 운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전문경영인 체제가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영 구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1일 발표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집단은 64곳이다. 이중 총수가 있는 집단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과 공시 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자산 10조원 미만)을 더해 총 55곳이다. 전체의 85.9%가 총수가 있는 기업이다.
이번에 신규로 편입된 IMM인베스트먼트를 제외하고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은 창업주의 후손들이 이끄는 가족경영 기업이다. 동일인이 창업주인 곳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홍국 하림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등이 있고, 대부분이 창업주의 후계자들이다.
총수 없는 집단은 포스코, 농협, KT, S-Oil, 대우조선해양, KT&G, 대우건설, HMM, 한국GM 9곳이다. 이중 S-Oil과 한국GM은 외국자본이 최대주주로 있고 경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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