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 워치]"국책은행의 리스크 관리법...회피 아닌 최소화"이동환 한국수출입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진현우 기자공개 2020-06-22 10:43:09
[편집자주]
1762년 설립된 영국의 베어링은행이 문을 닫은 이유는 단 한 건의 주문실수 때문이었다. 파산 직전까지도 베어링은행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익을 쫓아 리스크를 테이킹하려는 영업조직과 사전에 위기를 감지하려는 리스크관리 조직 간의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금융회사와 기업은 성장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고, 금융위기를 거치며 정비된 리스크관리 조직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더벨은 리스크관리 정점에 있는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의 역할과 리스크 대응 전략, 구체적인 사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8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출입은행과 시중은행이 리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 지원과 산업안정이라는 정책금융 목적이 분명하다 보니 위험이 크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감수하고 금융지원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반면 시중은행에서는 감내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피하는 방법을 차선책으로 택하기가 쉽다.리스크를 ‘지우기’보다 ‘최소화’하며 실행해야 하는 게 국책은행의 리스크관리 키워드인 셈이다. 올해 본부장으로 승진한 이동환 수출입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사진)도 애초 시중은행과는 사업 지향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리스크를 피하게 되면 정책금융 수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생존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국책은행부터 찾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높다고 무작정 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는 말이다. 수출입은행은 코로나 19로 자금경색에 처한 국내 기업에 신규자금 8조7000억원을 포함해 20조원 이상의 금융지원을 추가로 실행하고 있다.
◇기업별 한도 집중관리 '특색'… 정책금융 특수성, 국가별·산업별 리스크 주안점
수출입은행의 여신 포트폴리오 대부분은 기업금융이다. 수신(예금)을 통한 조달기능은 없어 B2C인 소매금융은 없다. 기업금융은 가계금융보다 건당 여신규모가 크기 때문에 부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에 미치는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중은행들보다 해외진출 관련 금융지원이 많아 국가별·산업별 리스크에 무게중심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성이 짙다.
수출입은행의 건당 여신규모는 많게는 조 단위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큰 기업들의 경우 일일이 리스크한도 집중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기업별 한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리스크심의위원회를 거쳐 익스포져를 승인하도록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다.
소매금융은 개인 차주들이 많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자연스레 리스크가 분산되지만, 기업금융의 경우 1~2개 기업만 회수불능 상태로 전락하면 수익성·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단적인 예로 2010년경부터 시작된 중소형 조선사들의 부실을 들 수 있다.
조선업이 호황기였던 시절 수출입은행은 해외 선주들의 요청으로 선수급환급보증(RG)을 발급하며 사업 비중을 늘렸다. 다만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대선조선 등이 수주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 여파가 고스란히 미쳤다. 수출입은행은 2016년 대우조선해양 영구채권 평가손실이 발생하며 그 해 1조원 중반대의 적자를 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 조선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부실채권(NPL) 비율도 개선시켜 왔다. 수출입은행은 조기경보시스템을 통해 부실징후가 보이는 차주를 사전에 식별해 적정 여신규모로 관리함과 동시에 채권보전 강화 등의 후속조치를 계속해서 취할 계획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 양호한 건전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대기업 차주들은 언제나 중점관리 대상으로 여기며 1대1로 관리하고 있다”며 “연초 개별 기업들의 한 해 사업계획을 참고해 지원계획을 정하지만, 기업들이 처한 대내외 환경변화에 따른 영향력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며 대출규모를 항시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 이후 첫 리스크부서 탄생, 2015년 본부로 지위 격상
이 본부장은 수출입은행 리스크관리부서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88년 입행한 이 본부장은 10년 뒤 신설된 리스크&ALM부서에서 ALM(자산부채관리) 업무를 맡았다. 수출입은행의 자산과 부채는 원화·외화가 섞여있기 때문에 만기·환율·금리가 미스매칭(불일치)하면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중요했다.
이후 ALM 기능은 재무관리부서로 이관됐고, 리스크&ALM부서는 2014년 리스크관리단으로 격상됐다. 당시 리스크관리단에는 △리스크기획팀 △신용리스크팀 △신용평가 1·2·3팀 △여신감리실로 이뤄졌다. 초대 리스크관리단장은 현재 전무이사를 맡고 있는 강승중 단장이 맡았다. 이듬해 리스크관리단은 1년 만에 본부로 위상이 올라갔다. 강승중 단장이 리스크관리본부장으로 승진해 2018년 7월까지 수출입은행 리스크업무를 도맡았다.
이후 백남수 리스크관리본부장이 배턴을 이어받았고, 올해 초 이동환 리스크관리본부장이 세 번째로 리스크 총괄 직책을 부여받았다. 역대 리스크관리본부장 모두 리스크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리스크관리가 은행 내부적으로 전문적인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리스크 부서에서 말단 직원부터 부장, 본부장까지 담당하며 탄탄한 업력과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시중은행比 ‘자본적정성’ 관리부담 덜해… RWA 증감폭, 환율변동 영향 커
보통 시중은행에서 사업부별 리스크한도를 설정할 때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지표는 ‘목표 BIS비율’이다. BIS비율은 자기자본(분자)을 위험가중자산(분모)으로 나눈 값이다. 가용자본 이내에서 여신규모를 얼마나 가져갈 수 있을지를 책정하는 일은 리스크 완충능력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시중은행이 연초 신종자본증권(기본자본)·후순위채(보완자본) 발행에 열을 올리는 것도 자본 확충을 통해 성장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반면 수출입은행은 바젤Ⅲ 관련 BIS비율 관리부담이 시중은행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국책은행은 정책금융을 수행해야 하는 기관이라 수익성을 제고하며 BIS비율을 신경 써야 할 당위성이 크지 않다. 더욱이 국가 신용등급을 따르기 때문에 시중은행처럼 BIS비율이 떨어져 하우스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염려도 없다.
물론 수출입은행도 감독당국의 BIS비율 규제 하한선(10.5%)을 지켜야 한다. 지난 2016년 수출입은행도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적이 있다. 당시 BIS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다만 유상증자가 어려운 시중은행과 달리, 수출입은행은 국가 예산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후 자본증권을 발행한 적은 없다.
자본증권 발행비용이 수출금융을 받는 기업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수출입은행은 외화대출이 전체 여신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위험가중자산(RWA) 변동에 있어 환율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버퍼를 유지해야 한다.
일례로 1억달러를 빌려줬을 때 환율이 오르면(1100원→1200원), 가만히 있어도 RWA가 늘어나 BIS비율이 떨어지는 구조를 생각하면 쉽다. 따라서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 정부와 협의하며 필요 자본량을 협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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