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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 공정거래 트래커]반박할 수 없는 명분, '공정·정의' 사각지대는 없다'유통공룡 탄생' 세분화·전문화 요구, 내부거래·오너이슈 등 철통 감시

최은진 기자공개 2021-03-24 07:23:44

[편집자주]

2010년대 초반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된 '경제민주화'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공정경제'라는 다른 이름으로 재계에 더 날카로운 칼날이 드리워졌다. 특히 유통업계는 중소상공인과 상생이 필요한 영역으로 공정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상위권 대그룹과 달리 여전히 구태 흔적이 역력한 유통기업들은 이제 비로소 변화를 준비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유통기업들의 공정거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 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3월 18일 08: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의 또는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방법으로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도록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경쟁시장의 근간으로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고전경제학자 애덤스미스 조차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정의'를 꼽았다. '시장' 본연의 기능으로 충분히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지만 국가가 나서 정의로운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규제는 정의라는 불분명하고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지점을 파고든다. 특히 대그룹에 대해 오늘날 '공정거래'라는 말로 규제와 제한을 정당화 시킨다. 자원을 독점할 능력이 있는데다 이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을 통해 더 세밀하고도 분명한 규제를 가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주주 사익편취 규제, 대형마트 출점 규제, 온라인 배송일 제한 등 재계에 드리워진 칼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각각 다른 영역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정거래, 궁극적으로 정의라는 궤를 관통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이라 사실상 사각지대였던 유통기업들까지 규제의 그림자가 강화되고 있다. 롯데, 신세계, CJ그룹 등 대그룹은 물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기업까지 영향을 미친다. 각각 이슈는 다르지만 전 유통기업이 사실상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보다 강력해진 규제와 치열해 진 경영환경 속에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유통기업' 영향력 확대, 시장질서 공정성 화두

국내에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건 1980년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0년대 첫 독립기구로 분리됐다. 경제운영의 주체가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되면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체제 확립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기업감시가 시작됐다.

비자금 이슈에 국한됐던 감시가 공정과 정의라는 명분으로 사업영역 및 거래 관계까지 파고들었다.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등 지분구성은 물론 과장광고, 협력사 갑질 의혹, 계열사 내부거래 등을 도마 위에 올렸다. '재벌 길들이기'라는 비난을 등에 업었지만 그 취지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원장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 2000년대 들어 더욱 강화되면서 일부 재벌그룹에 초점을 뒀던 타깃이 기업 및 업권 구석구석으로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유통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유통시장은 소비자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업권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정부 주도권 내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유통'이라는 특성상 필연적으로 대형화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 지배력은 해가 갈수록 커졌다. 소수가 다수를 잠식하게 되면서 시장 질서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는 유통 채널업권 뿐 아니라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전반에 걸쳐 관행이 됐다.

공정거래법은 본질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부당거래' 가능성을 전제로 삼는다. 대형화 된 유통기업을 끊임없이 규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실제로 유통기업에게는 특별하게 출점규제, 의무 휴일 등 직접적으로 사업에 제한을 가하는 법을 명문화 하고 있다.


2012년 한 지자체에서 시작한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는 법으로 규정하면서까지 강제화 했다. 당시 과태료를 맞더라도 따르지 않겠다던 대형마트들은 결국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 꼬리를 내렸다. 최근에는 대형마트 뿐 아니라 복합쇼핑몰까지 의무휴일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 전통시장을 살리는 취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근로자 처우를 위해 의무휴일제를 명절 등 특정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정, 정의, 상생, 근로자 복지 등 시대적 가치가 계속 추가되면서 국내시장을 타킷으로 삼는 '유통업권'이 규제의 최전방에 서게 됐다.



유통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쿠팡 등 '이커머스' 산업을 규제하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이들은 업력이 짧은 벤처기업에 불과하지만 이미 규제의 시각에서 시장 지배력을 지닌 대형 사업자로 분류하는 분위기다. 기존 대형 유통사를 압도하는 매출을 창출하고 있고 고용, 물류 등 부수적인 경제적 파급도 상당하다. 공정거래 뿐 아니라 노동, 환경 이슈로 규제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는 데 주목된다.

◇기업문화·경영방식 쇄신 시대적 요구…비자발적이지만 혁신 '대세'

또 다른 측면에서 유통기업들에 드리워진 공정거래 이슈는 오너일가에 대한 규제에서 비롯된다. 대그룹 집단에서 유통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간 미미했지만 점차 대형화 되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데 따라 사정권에 들어오고 있다. 국내경제의 부흥기가 중후장대 산업에서 시작됐고 이로인해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유통 및 소비재 기업이 대폭 성장한 계기가 마련됐다.

2000년 말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자산총액 상위 30대 대그룹 가운데 소비재 사업을 주축으로 삼는 그룹은 총 4곳에 그쳤다. 그러나 2019년 말 기준으로는 6곳으로 늘었다. 규제 대상인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넓히면 64곳 중 12곳이 유통기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적 파급이 상당한 대그룹 지위를 갖게 된 유통기업들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업력이 오래된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이고 전문경영인 체제보다는 오너십 중심의 경영구도가 구축 돼 있기 때문에 변화에 둔감하다. 지분구조가 얽히고 설킨 것은 물론 내부거래를 통한 연결고리도 상당하다.

사업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변화에도 느리다. 경쟁플레이어들이 국내기업들인 만큼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반면 중후장대 기업들은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 하면서 그에 맞는 수준으로 변화를 거듭한 데 따라 현재 기업문화 등 여러 관점에서 유통기업들과 상당한 격차를 냈다.

대그룹 집단과 그 오너에게 드리워진 잣대가 날카로워지면서 감사제도 및 사외이사 제도 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내부거래 이슈나 하림그룹의 사익편취 이슈 등은 궁극적으로 오너일가를 겨냥한다. 모두 비교적 최근 대그룹 집단으로 지정된 기업들이다.

대그룹 집단이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친숙하다는 유통기업의 특징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남양유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너일가의 이슈가 끊임없이 회자되며 기업의 경쟁력을 낮췄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제품만 소비하는 게 아닌 기업의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규제 이상의 불안감이 만연한 분위기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해 유통업계선 최근 투명경영, ESG 경영, 상생경영 등을 화두로 내세우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변화의 유인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비롯됐지만 비자발적으로나마 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 셈이다. 진화하는 규제와 소비자의 시선을 이제 막 따라가고 있다. 새로운 전략과 과감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ESG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사회적 분위기가 옛날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체감한다"며 "내부적으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생각과 전략을 새롭게 구상하는 출발점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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