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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 공정거래 트래커]쿠팡, '회피에서 순응으로' 거미줄 규제 정면 승부②'중대재해법··플랫폼법' 사정권, 美 상장 분수령 '경총가입' 등 소통 강화

최은진 기자공개 2021-03-25 08:09:41

[편집자주]

2010년대 초반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된 '경제민주화'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공정경제'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재계에 더 날카로운 칼날이 드리워졌다. 특히 유통업계는 중소상공인과 상생이 필요한 영역으로 공정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상위권 대그룹과 달리 여전히 구태 흔적이 역력한 유통기업들은 이제 비로소 변화를 준비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유통기업들의 공정거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 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3월 22일 10: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달라진 시장의 요구를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받아들일 것이냐'는 온전히 기업이 스스로 결정할 몫이다. 어떤 기업은 시류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하는가 하면 다른 곳은 기존 관행을 고수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쿠팡은 그동안 후자에 가까운 전략을 취했지만 최근 전자로 기우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증시 상장을 기점으로 시장과 소통에 적극적인 태도와 전략으로 선회했다.

한국시장에서 불거진 다양한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있지만 미국시장 투자자들을 의식한 행보이기도 하다. 공정거래 및 환경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미국에서 국내에서 불거진 논란과 규제는 쿠팡의 밸류에이션을 낮추는 불안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비자발적이지만 시대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이 생긴 셈이다.

◇회피에서 대응전략으로 전환, 기업 최대 리스크 '규제' 꼽아

쿠팡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였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2015년 협력업체 '갑질' 논란과 관련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당시 '회피'를 택했다. 함께 채택된 경쟁 이커머스 대표이사들은 모두 참석했지만 김 의장은 건강을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정책실장이던 박대준 쿠팡 현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그리고 5년 뒤인 2020년 쿠팡 물류센터의 일용직 노동자의 사망사건으로 인해 김 의장은 또 다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에는 갑작스레 최종명단에서 빠지는 '실력'을 발휘했다. 이번엔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급 임원을 대식 참석시켰다.

김 의장은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을 꺼린다. 특히 질타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공정거래 논란이 불거질 때는 물론 언론 등 공식석상에도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쿠팡의 대관 및 대언론 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부 정보와 전략을 철저하게 외부에 감추면서 공격적인 경영과 투자를 펼쳤다. 쿠팡의 주주구성이 밝혀진 것 역시 미국시장 상장을 추진한 최근의 일이다. 창업주인 김 의장이 얼마나 지분을 구성하고 있는지 조차 최근 드러날 정도로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랬던 쿠팡이 미국시장 상장을 전후해 불과 한두달 사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달 초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에 자발적인 가입을 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정 규모 이상 되면 법적으로 자동 가입되는 대한상공회의소와 달리 경총은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협회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나 법적 이슈 등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서 쿠팡 역시 경영인의 한 주체로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쿠팡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이 잇달아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쿠팡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기업인 가운데 하나로 대응하겠다는 목표도 드러냈다. 잇달아 불거진 노동 및 공정거래 이슈, 더 나아가 쿠팡을 겨냥한 법적 규제가 더욱 조여오면서 다른 기업인들과 '연대'를 고민하게 만든 셈이다.

김 의장이 쿠팡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으로만 자리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표면적으로 넓은 시각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실무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는 게 공식입장이었지만 내막은 쿠팡의 성장과 함께 불거진 사회문제 등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시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쿠팡은 한국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업과 관련해 '형사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는 점을 리스크로 꼽았다.


실제로 올해 1월 제정되고 내년 1월 시행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한 사건이 기업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면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에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원 이상의 벌금 등을 부과한다. 김 의장이 대표이사를 계속 맡게 된다면 근로자 사망이슈가 연일 터지는 상황에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김 의장 대신 경영총괄 대표이사에 강한승 사장을 선임한 것도 이를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강 사장은 강신옥 전 국회의원의 아들로 판사, 청와대 비서관, 법무법인 김앤장 등을 거치며 법은 물론 정관계 인사와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김 의장은 물론 쿠팡에게 상당부분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규제 대응 자발적 변화 시도…공헌활동도 강화

소극적 쿠팡을 적극적 전략으로 선회하게 만든 또 다른 배경으로는 쿠팡을 사업적으로 제재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정도로 커진 데 따라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되고 있다.


우선 공정위가 추진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한다. 그간 플랫폼은 중개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계약 당사자들끼리의 분쟁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결제·대금수령·환불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따라 고의 또는 과실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면 입점업체와 연대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다.

입점업체에 대한 대금정산일을 제도화 시키는 소위 '로켓정산법' 제정도 준비 중이다. 쿠팡의 대금지급일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데 따라 직접적으로 규제를 가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 이용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도 입점업체와 계약을 공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수수료 및 대금정산방식 등 상세한 내용을 계약에 명시토록 하면서 사업 세부적인 부분까지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쿠팡의 핵심경쟁력인 새벽배송을 규제하는 법안을 여당 중심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올초 새벽배송을 규제하면서 전통시장 등 중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추진됐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규제라는 여론의 비난이 불거지면서 속도조절에 들어간 상황이다.

쿠팡은 '규제'라는 다양한 위협요소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인들과 연대하는 한편 다른 측면에서는 자발적인 변화도 시도 중이다. '착한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해 중소상공인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구사하는가 하면 각 지자체와 협업 하에 대규모 물류시설 등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근로자들에게는 스톡옵션을 살포하다시피 배포하며 로얄티를 증진시키는 노력도 기울인다. 쿠팡이 앞서나가는 이커머스 시장이지만 맹렬히 추격하는 네이버 등의 경쟁자들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변화된 시장의 관점을 받아들이며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통시장은 다양한 규제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쿠팡만큼 그 날카로운 잣대가 적용되는 곳도 없다"며 "입점 업체와 관계, 배송, 근로환경 등 전방위 규제가 드리워지고 있기 때문에 쿠팡으로선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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