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1월 04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를 끌어들인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최근 경영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고 회사를 매각하기로 한 남양유업 오너 일가. 공통점은 재무적투자자인 사모펀드를 파트너로 삼았다는 점이다. 동시에 거래 상대방인 사모펀드와 분쟁이 벌어졌다는 점 또한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싸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신 회장은 사모펀드와 약정한 풋옵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또 어떤가. 오너 일가가 직접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도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 매각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고 있다.
핵심은 약속이행이다. 거래를 진행할 당시에 맺은 서로간의 약속을 제대로 지켰다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행 당사자가 다른 논리로 부당함을 주장하니 결국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빈번해질 수 밖에 없다.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서로 멱살을 잡고 법정으로 들어가 판사 앞에 선다고 명쾌한 결론이 내려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간은 사모펀드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는 재판 과정에서 체력은 고갈되기 마련이다.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 펀드의 만기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남양유업의 경우 투자가 이뤄지기도 전에 싸움이 시작된 케이스지만 "버티면 물러난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자자에게 성과로 보답해야 하는 운용사 입장에서는 법정에서 마냥 다툼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사모펀드의 태생적 약점을 대기업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법대로 하자는 사모펀드의 엄포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사냥꾼과 탐욕의 프레임을 앞세워 피해자로 둔갑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산그룹과 5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끝에 사모펀드는 투자 원금은 커녕 그야말로 '깽값' 정도만 받고 긴긴 싸움을 끝냈다.
문제는 대기업과 사모펀드간 이러한 불협화음이 거래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금전적, 시간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뤄지는 딜들은 현재의 다툼을 반면교사 삼아 보다 정교해지고 난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수고로움을 감내해야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 신뢰의 문제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사모펀드의 투자 형태는 더욱 다양해졌다. 대기업들도 넘치는 시중 유동성을 지렛대 삼아 다양한 사업 확장을 모색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압축하면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앞으로 손을 맞잡을 일이 더 빈번해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측 모두 빼앗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대결 구도가 아닌 동반자적인 관점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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