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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관성'과 '혁신'의 딜레마 [thebell note]

윤진현 기자공개 2023-03-16 07:14:19

이 기사는 2023년 03월 14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관성의 법칙'은 뉴턴의 운동 제1법칙이다. 외부 자극을 받지 않으면 동일한 속도로 운동을 유지한다는 개념은 자연 운동의 공리(Axiom), 즉 진리로 통한다.

인간사에도 '관성'은 존재한다. 특별한 자극이 없으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건 변화와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인간의 습성인 듯하다. 최근 '혁신'을 내세운 예비 상장사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태도를 보며 관성에 대해 재고해봤다.

“해당 평가 지표가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쓰이지 않던 개념이기에 정정을 요청했다."

금감원 심사역이 한 말이다. 단순히 새로운 지표라서 정정을 권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 관계자가 여럿이다. 정정 대상은 업계 1호 상장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밸류에이션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 기업이 주였다.

일례로 LB인베스트먼트는 운용자산비율(EV/AUM) 지표를 새롭게 제시했다. 벤처캐피탈의 가치 산정에 주로 쓰인 주가수익비율(PER)이 평가 시점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던 탓이다. EV/AUM과 함께 금융업 단골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도 활용했다.

객관성을 높이려는 시도였지만 금감원의 정정 요청에 EV/AUM은 못 쓰게 됐다. 엑셀러레이터 1호 상장에 나선 블루포인트파트너스도 비슷한 사례다. 세 차례의 자진 정정으로 몸값을 낮추고 업계 기밀인 투자자산 내역까지 공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수요예측 하루 전날 이례적으로 정정 요구를 받았다. 금감원이 유동성 지표 보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트업 투자사 특성상 현금 보유량이 줄어드는 시기가 있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금감원이 기업을 보는 시각은 제조업에 머물러있다'던 IB 관계자들의 푸념이 떠올랐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신중을 가했다는 평가와 함께 몸값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공존한다. 수면 위에서 예비 상장사가 제시한 기업가치를 낮추라고 할 수는 없으니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IPO 기업들도 이런 분위기를 인지한 듯 정정 과정에서 스스로 몸값을 낮추고 있다.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상장 후 주가가 떨어지는 것보다 보수적인 몸값으로 주가 상승을 꾀하는 방법이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상장에 나선 기업의 몸값이 적정한지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금감원이 타성에 젖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은 아쉬울 따름이다. 관성과 혁신의 '딜레마'에 갇힌 금감원이 해법을 찾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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