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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메모리의 위기, 비메모리의 기회

김혜란 기자공개 2023-03-17 12:49:25

이 기사는 2023년 03월 15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액의 약 20%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경제가 반도체 수출로 먹고산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반도체 불황이 닥치면서 수출도 작년 10월부터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재고가 쌓이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약 2조원 적자를 냈고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도 적자전환했다.

지금의 위기는 경기변동에 예민한 메모리 산업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산업 모두 다 잘 해내는 곳은 없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분야는 미국이 꽉 잡고 있고 파운드리는 대만이,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일본과 유럽이 주도한다.

그러나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선 메모리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앞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달렸다. 더군다나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미국 인텔과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어 1등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메모리에서 격차를 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메모리에서 미래를 만들어가지 못하면 반도체 강국의 타이틀은 지켜낼 수 없다.

지난해부터 후공정(OSAT) 기업과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등 시스템반도체 산업 생태계 기업들을 차례로 조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메모리 산업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축으로 한 외주 협력사와의 협업 체계가 지금처럼 지탱해주면 되지만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완전히 다르다. 철저한 분업화가 이뤄지는 만큼 각 밸류체인 기업이 삼성만큼이나 각각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국내 팹리스와 설계자산(IP) 기업들이 스타기업으로 큰다면 삼성 파운드리의 중요한 고객사 중 하나가 되는 그림을 기대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불모지였던 국내 팹리스 생태계가 확 커질 수 있다.

디자인하우스들은 국내 팹리스를 지원할 수 있게 역량이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해외 고객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경쟁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국내 OSAT가 대만 ASE 등 글로벌 기업을 뛰어넘는 첨단 패키징 기술력을 갖추면 어떨까. 글로벌 팹리스들이 삼성 파운드리 주변 생태계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

지금 메모리 산업이 위기라고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기회다. 정부의 육성 의지가 강하고 밸류체인 내 기업들도 각자 자리에서 많이 노력하며 성장해왔다.

우려되는 점도 있다. 입법 지원의 키를 쥔 정치권이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다. 한 예로 지원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꾸려진 국회 첨단전략산업특위에는 국회 유일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제외된 데다 외부 전문가들이 모두 빠졌다. 시스템 반도체 밸류체인이 얼마나 깊고 넓은데, 국회의원들만으로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할까. 메모리도, 비메모리도 위기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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