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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참을 수 없는' 채권맨들의 가벼움

이승우 자본시장부 부장공개 2023-06-12 07:08:44

이 기사는 2023년 06월 09일 07: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채권 거래는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대부분 장외에서 이뤄진다. 전화 혹은 메신저 등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사고 팔고'가 이뤄진다.

때문에 거래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서로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 평소 스킨십은 필수다. 그러다 보면 형님·동생 관계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혹은 '형님'에게 주문을 넣는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야만 돌아가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법 혹은 감독규정의 선을 넘나들기도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채권 파킹거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바닥에선 공공연한 일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연계 자전거래로, 자본시장법상 불법인 자전거래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관례처럼 여겨진다.

내가 사야 할 채권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형님이나 동생이 속한 증권사가 대신 사주는 방식이다. 물론 그 사이 채권 가격이 변한다 하더라도 최초 매입 가격으로 내가 다시 사주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한다. 실제로 시간이 지난 이후 원래 주인에게 약속된 가격으로 채권이 돌아간다.

문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채권 가격이 급변할 때 일어난다. 금리가 올라 채권 가격이 급락했을 때 그렇다. 원래 사주기로 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사야하니 '배째라'가 된다. 특히나 고객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두 증권맨간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내부 통제 문제로까지 불거진다. 이 정도까지 가면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한다.

형님과 동생의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최근 일부 증권사 신탁과 랩 상품에서 발생한 채권 만기 미스매치, 그리고 그 뒷단의 채권 파킹 문제가 딱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채권 파킹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감독당국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메커니즘이다. 여의도 채권시장의 관행이라며 '적당한 선'에서 암묵적인 용인이 있었을 뿐이다.

레퓨테이션 리스크를 극도로 경계하는 삼성증권과 일부 증권사는 수년 전 이같은 거래를 중단했다. 당장 이익이야 보겠지만 결과적으로 회사 전체 리스크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채권 파킹 거래가 극단으로 치닫으면 고객에도 돈을 못 돌려주고 형님 동생하던 사이가 송사로 번지기까지 한다. 이 대목에 가서는 채권맨들간 중하게 여기던 '의리'가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돈이 되는 모든 것을 쫒아 다니는 게 증권맨 그리고 증권업의 본질이라지만 인간 본연의 유대 관계가 허망하게 녹아버리는 모습은 뒷맛을 남긴다. 수년 정도의 사이클로 금리가 올라가는 그 때만 되면 여지없이 채권파킹 거래 그리고 채권맨들의 민낯을 본다.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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