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8월 01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명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기표로서 이름은 단순한 소리나 표기일 수 있겠지만 기의로서의 이름은 이미 정의된 개념이기 때문에 이름을 바꾼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6월 이사회를 열고 협회명 변경을 의결했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여전히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정체성은 ‘한국’ 그리고 ‘벤처캐피탈’에 있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명칭 변경은 42명의 이사진 중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가능한 안건이었다. 이사진들의 지지가 부족했던 탓이었을진 몰라도 윤건수 협회장의 ‘7대 공약’은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윤 협회장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름을 ‘한국벤처투자협회’로 변경하고자 했다. 벤처 투자라는 활동이 더 이상 벤처캐피탈(VC)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원사의 대부분, 이사회 전원이 VC 소속임을 감안할 때 이 안건은 부결될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었다고 봐야 한다.
명칭 변경보다 선행돼야 했던 일도 있었다. 협회 정관상 정회원이 될 수 있는 기관은 창업투자회사,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모태펀드 출자를 받은 유한회사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에 따라 1호 액셀러레이터 회원사 퓨처플레이도 특별회원으로 협회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협회는 1989년 VC 업황 개선, 상호 간 정보교류를 목적으로 발족한 단체다. 출범 당시 명칭은 '한국투자회사협회'였으나 목적 자체가 VC들을 위한 단체였단 사실은 다르지 않다. 1997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협회 정체성을 벤처 캐피탈로 한정했다. 20년이 지나 다시 협회 정체성과 문호를 벤처 캐피탈 그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려면 협회가 지향하는 방향성부터 바꿔야 한다. 벤처 투자라는 활동을 하는 회사라면 누구나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정회원 가입 조건 자체가 배타적인데, 명칭 변경이 가능할리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법정협회다. 이름을 바꾸기 위해선 중소벤처기업부의 정관 변경 승인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명칭 변경에 앞서 중기부와의 정관 승인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협회명 변경은 윤건수 협회장 임기 중 맨 마지막으로 추진해야 할 안건이었다. 혼자 가려면 빨리 가고 함께 가려면 느리게 가라는 말이 있다. 협회명 변경은 함께 가야 했던 안건이었다.
취임 160일 가량이 지난 윤 협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나머지 공약을 수행하려면 지금이라도 함께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까. 협회명 변경 부결은 단순히 반대 이상의 함의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윤승규 기아 부사장 "IRA 폐지, 아직 장담 어렵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셀카와 주먹인사로 화답,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무뇨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무뇨스 현대차 사장 "미국 투자, 정책 변화 상관없이 지속"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