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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새 길을 묻다]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들[경쟁력 강화방안]⑦시대 역행하는 금산분리…여전한 관치금융에 멍드는 독립경영

김형석 기자공개 2023-09-01 08:04:53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들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애플 통장까지 나왔다. 애플 통장엔 석달만에 100억달러, 12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종산업간 결합은 물론 영역과 경계가 무너지면서 금융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한국 금융은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규제와 관치의 테두리 안에서 더딘 변화를 보이지만 조금씩 새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 및 연구소 협회의 브레인들을 찾아 한국 금융 산업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고 그들의 고민과 변화 방향과 속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30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3위다. 같은 기간 무역규모와 수출규모는 각각 8위와 7위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딛고 수출 주도형 산업을 고도화하며 글로벌 경제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과 함께 경제의 핵심 축인 금융의 발전은 더디다. 대표적인 지표인 뱅커지(The Banker) 기준 우리나라는 세계 50위에 속하는 금융그룹이 한 곳도 없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융지주의 글로벌 순위(Tier1 자본 기준)는 평균 70위 수준에 불과하다. 보험을 포함한 금융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치의 경직성이 우리나라 금융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주도의 금융사 CEO 승계 절차와 과도한 규제가 금융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 결과 금융지주 경영진들의 경영 보폭도 축소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금융지주 전략 방향은 위험성 높은 투자은행(IB) 업무 보다는 안정성 높은 국내 대출 업무에 매몰돼 있다는 평가다.

금융위원회.
◇기울어진 운동장, 금융업 발전 막는 금산분리

전문가들이 꼽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 저하 요인은 엄격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 등 금융사 지분을 일정한도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예금이나 채권 등을 통해 조달된 자금을 재원으로 재벌기업 등이 영업활동을 펼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반대의 경우도 규제 대상이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는 사실상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또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은행은 원칙적으로 다른 회사에 지분 15% 이상 출자할 수 없다. 산업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가 오히려 금융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걸림돌이 됐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금융업 환경에서 금산분리는 가장 큰 장애 요소다. 금융과 비금융산업의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다양한 사업모델로 수익 다각화를 노려야 하지만 금산분리 규제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플랫폼 기술이 금융과 비금융에 함께 쓰이지만 금융회사들은 더 큰 제약을 받는다.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유독 금융업발 핀테크는 더 큰 제한을 받는다. 반대로 비금융사업자는 선불충전서비스 등으로 이미 금융업을 넘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인터넷은행은 산업자본인 IT(정보통신기술) 기업이 운영하는 비대면 은행이다. 정부는 2015년 금융업의 혁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터넷은행을 인가했다. 이후 이들 IT 기업에게 예외적으로 해당 은행의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진출을 사실상 허용한 사례다.

하지만 금융사의 산업계 진출은 여전히 막혀있다. 미래 금융업을 위한 AI 기술 개발 등 금융사의 핀테크 산업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막힌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사들은 기존 여·수신 영업활동 이상의 혁신 영업모델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우리 금융지주들의 이자이익 의존도에 그대로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당기순이익은 10조88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4.4%(8조1056억원)에 달한다.

은행 의존도가 높다 보니 5대 금융지주의 비이자수익 비중은 올해 상반기 26%에 그쳤다. 특히 최근 5년간(2018~2022년) 국내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12% 수준으로 미국 은행(30.1%)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지주가 은행의 이자이익에만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금융의 디지털 및 빅블러 가속화 현상에 따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해 비금융회사 지분 소유 및 부수업무범위 확대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IT 기업 등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면서도 금융업의 산업 진출을 막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결국 은행의 혁신을 방해하는 것은 정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2016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금산분리 완화책을 보면 일본의 금융지주사들은 비금융과 금융의 융합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며 "우리 당국도 금융회사에 대한 금산분리 완화로 금융지주사의 비이자수익 증대의 길을 열어주고 이를 사회에 환원할 정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하다"고 밝혔다.

(왼쪽부터)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김광수 은행연합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 김익수 NH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이 지난 7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CEO 승계에 드리운 '관치'의 그늘…선진화 아직

금융업 발전을 가로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관치'다. 이 역시 규제의 연장 선에서 행해진다. 근본적으로 금융업을 규제산업으로 보는 정부의 관점이 금융업 경쟁력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주요 금융지주사 수장 선출과 경영에 정부 인사들이 관여하면서 독립적인 경영 능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관료의 '낙하산' 인사는 대표적인 관치 사례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고리로 국책은행과 금융지주 수장 자리에 외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임명됐다. 주요 국책은행 및 금융지주 회장들을 일컬어 금융권 ‘4대 천왕’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후 정권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의 서별관회의와 문재인 정부의 금융지주 회장들과의 갈등 역시 관치의 그늘이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금융사의 인사와 경영에 관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일종의 정권 차원의 금융지주 길들이기 시도였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CEO 승계 프로그램 선진화 방안(지배구조 개편)도 논란의 여지는 지속되고 있다. 현재 금융 당국이 진행하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은 금융사 CEO의 통찰력·전문성·리더십 등에 대한 역량 확보와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를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방식만 바뀌었을 뿐 정부와 당국이 금융사 인사와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초를 거치며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일제히 교체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또 다른 연구원은 "궁극적으로 주주들이 이사회 및 경영진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마저도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어 실제 금융사들이 독립적인 승계프로그램을 구축하기 보다는 정부 입맛에 맞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연구원은 "당국이 나서 기존 CEO의 영향력이 철저하게 배제된 걸 확인하겠다는 것 자체가 당국이 금융사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라며 "회장과 은행장을 비롯한 주요 CEO 선정 과정에서 금융사 내부 절차적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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