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10일 07: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7년 로슈와 '세프트리악손' 기술이전 계약, 1997년 노바티스와 마이크로에멀젼 제제 기술수출, 2009년 퍼스트제네릭(개량신약) 아모잘탄 탄생,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사노피·얀센 등 빅파마 6곳에 7개 혁신신약 후보물질 8조원대 기술이전.100여년 한국 제약업계 역사에서 기린아 한미약품이 만들어낸 최초 혹은 최대 규모의 성과들은 여전히 독보적인 '업적'으로 남아있다. 한국기술도 해외 빅파마에 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복제약 중심의 영업 일변도에서 퍼스트 제네릭, 더 나아가 신약이라는 새로운 길도 만들어냈다.
당시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결과를 듣기 위해 빅파마들이 직접 부스에 찾아와 스터디를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명성이 어느정도였는 지 가늠할 수 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 골리앗 빅파마에 감히 맞설 수 있었던 배짱과 도전. 한미약품이 보여준 기세를 꺾을 경쟁자를 지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 일임에도 한미약품이 만들어낸 성과는 이제 과거의 영광에 그친다. '그 땐 그랬지'라고 회자될 뿐 지금의 한미약품에 그와 같은 영광을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후계구도를 구축해놓지 못해서, 상속세 준비를 하지 않아서, 임성기 회장이 너무 갑작스레 타계해서'라는 아쉬운 뒷말들이 무성하지만 엄중한 현실을 바로 보는 단호함이 지금으로선 절실하다.
유한양행이 국산신약 렉라자의 FDA 승인이라는 축포를 터트리며 시가총액 12조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 비슷한 덩치의 한미약품은 4조원대를 멤돌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이라는 창업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내달려도 쉽지 않은데 대주주 이해관계라는 갈등으로 시간만 흐른다.
주주, 업계, 임직원들까지 모두가 한미약품의 밸류업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외치지만 특정인들의 샅바싸움에 본질은 퇴색된다. 그러는 사이 한미약품이 만든 50년 R&D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
201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 시작한 비만약 GLP-1이 업계 핫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정작 한미약품은 조명받지 못하고 뒤처졌다. 리가켐바이오·알테오젠 등 국내 최강 바이오 기술을 업을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도 잃었다.
대주주 갈등이라는 혼돈에 휩싸인 한미약품에 그 어떤 파트너가 협업을 논할 수 있을까. 내부 임직원들은 누구편에 섰느냐에 따라 조직이 나뉘고 자금줄이 막히며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부조리를 겪는다.
연이어 터져나오는 폭로, 소송전에 이제 여론도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금 유치라는 그럴듯해보였던 공약은 공수표가 됐다. 그들만의 싸움에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주가는 또 떨어지고 기업가치는 추락하고 구원투수를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의 당사자들 모두가 싸우는 목적의 본질을 밸류업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싸움으로 한미약품은 저물어간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걸까. 본질을 다시 되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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