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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고려아연·현대엘리 유증, 숫자와 규범으로 따져본 '차이'증자 규모·목적, 청약한도 달라…'국민주' 명분, 현 경영권 강화 효과는 닮은꼴

허인혜 기자공개 2024-11-04 08:59:54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1일 08: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상증자의 목적은 '국민기업'이다. 상황은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 속이다. 다만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현 경영진의 경영권 수성에 유리한 지분 환경이 조성된다.

고려아연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일각에서는 과거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증 결정과 법원의 판단을 떠올리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상황도 국민주를 내세운 명분도 이면에 숨겨진 것으로 점쳐지는 경영권 수성의 목표까지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평행이론이 아닌 숫자와 규범을 따져보면 차이점은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고려아연의 조건을 뜯어보면 발행주식 대비 유상증자 규모, 청약 한도가 다르다. 정관상 일반공모 목적은 두곳 모두 명시돼 있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유상증자 목표에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해 알렸고 고려아연은 차입상환에 가장 큰 자금을 투입한다.

◇'법적문제 없을 듯' 했던 현대엘리, 지배구조 개선 포함한 목적이 발목

현대엘리베이터는 2003년 11월 1000만주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고지했다.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주식 수의 178% 수준에서 유상증자 계획을 세웠다. 신주발행가액은 30% 할인율을 적용했었다.

당시 법률 전문가들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택한 일반공모 방식을 들어 법률적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공모 결정이 이사회의 권한이고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없다는 근거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결정은 공시 후 한달 뒤인 12월 KCC 측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무산됐다.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당시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추진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경영을 위한 자금조달 필요성에 부응한다기 보다는 기존 대주주와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KCC측의 소명자료가 충분히 인정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내고 KCC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003년 11월 유상증자 결정 공시를 보면 증자의 목적으로 '시설투자 및 사업다각화'를 명시했다.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회사 차원에서 지배구조와 재무구조의 개선도 목적에 포함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와 고려아연의 닮은 명분, 닮은 효과

20년전 현대엘리베이터와 비교하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는 조금 더 완충장치를 깔아뒀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는 소각 예정 주식 제외 발행주식총수의 20%고 청약한도는 약 11만주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청약한도는 300주에 그쳤었다.

그럼에도 현대엘리베이터와 고려아연 유상증자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두 기업의 유상증자 명분과 숨은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 기업'이었다. 외부에서 두 기업의 유상증자 목적으로 현 경영진의 경영권 사수를 예상한 점도 닮아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주도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를 국민기업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대엘리베이터를 특정인이 지배하지 않고 대주주의 전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국민기업으로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다.

고려아연이 내세운 명분도 비슷하다.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수 있게 해 국민주로 거듭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취지라고 했다.

추구한 명분도 같지만 효과도 유사하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명분을 받아들이기보다 효과에 주목한다.

목표대로 유상증자와 자사주 소각이 이뤄지면 영풍 측의 지분율이 최대 2.4%p 낮아진다. 고려아연 측은 우리사주조합 20% 우선배정 등을 통해 3.33%p의 지분율이 추가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유상증자에 성공했다면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측의 우호지분이 늘었다.

◇소명 중요한 고려아연, '차입상환 목표' 설명 필요 없다지만

다만 일부 세부항목이 다르더라도 전례는 부담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일반공모 방식을 택한 기업이 법원으로부터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은 선례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아직 시장에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스스로의 목적 소명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여태껏 법적분쟁의 전망에서는 우위에 있어왔다. 영풍 측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제지하기 위해 제기한 가처분신청이 두 차례 기각됐기 때문이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낸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는 마무리됐다.

이번에는 공개매수가 아닌 유상증자로 법리를 다투는 만큼 이전의 스코어와는 별도로 봐야 한다. 고려아연은 법률 자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적 제반 사항을 꼼꼼하게 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성적 소명은 법적으로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법정다툼을 떠나 투자자가 있는 상장 기업이라는 점에서 목적 소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의 목적에 차입금 상환이 있고 그 규모가 2조3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경영권 수성에 유상증자를 활용했다는 시장의 우려에도 답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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