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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자본, 영구채 러시]'자금난' 급한 불…영구채로 모면한 롯데·신세계그룹③최근 2년간 발행 급증, 7000억·9500억 각각 조달…신세계건설 최다

고진영 기자공개 2024-12-04 08:22:02

[편집자주]

신종자본증권 시장이 전례없이 붐비고 있다. 이론상 영원히 안 갚고 이자만 낼 수 있어 영구채라 불리지만 사실은 자본성이 최소화된 모순적 채권이다. 도입 후 십여년 동안 혼란과 의구심에 시달렸지만 올해 발행 규모가 6조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자본 같은 빚' 영구채가 필요했던 기업들의 사정을 THE CFO가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29일 14:41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부쩍 영구채 발행이 급증한 곳으로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이 있다. 그간 심심치 않게 영구채 시장을 찾긴 했지만 발행규모가 갑자기 늘었다. 계열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수단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동원 중이다.

THE CFO가 최근 10년간 발행된 신종자본증권을 집계한 결과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은 근 2년간 유독 발행규모가 늘었다. 특히 신세계그룹은 2015년부터 이달 29일까지 2조2774억원어치를 발행했는데 그 절반에 가까운 9500억원이 작년과 올해에 쏠려 있다.

애초 신세계그룹에선 신세계(3274억원)와 이마트 종속회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500억원)가 2015년 처음 영구채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 해 신세계는 재무 개선작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1조원을 넘는 센트럴시티 인수자금을 전부 은행에서 빌려오면서 총차입금이 2조원대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증축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앞뒀던 상황이다 보니 영구채로 눈길을 돌렸다. 이마트 역시 이듬해 3800억원을, 2019년 추가로 4000억원을 또 조달했다. 리스 관련 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부채비율 급등을 앞두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신세계와 이마트, 조선호텔앤리조트가 발행했던 영구채들은 모두 5년의 콜옵션(조기상환) 행사기간에 맞춰 차환 없이 상환을 마쳤다. 이와 달리 신종자본증권을 계속 리볼빙하면서 일정한 규모로 유지해온 계열사는 신세계건설이다.

신세계건설은 2015년 500억원어치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운영 중인 골프장 입회금 약 2700억원이 부채로 잡혀 2014년 부채비율이 2283%까지 올랐던 탓이다. 다음 해 찍은 영구채를 자본으로 분류하면서 부채비율을 1653%로 내릴 수 있었다.

당시 신세계건설이 발행했던 신종자본증권은 다른 계열사들에 비하면 조건이 좋지 않았다. 스텝업(step-up)이 붙는 콜옵션 기간이 2년으로 짧았을 뿐 아니라 금리도 5.3%로 비교적 높았다. 이후로도 완전히 갚지 않고 2년을 주기로 비슷한 규모를 발행해 기존 영구채를 대체해왔다. 2017년 500억원, 2019년 400억원, 2022년 300억원어치 신종자본증권을 차례로 발행했다.

꾸준해도 크진 않았던 신세계그룹의 영구채 발행금액은 작년부터 급증했다. 경영난으로 자진상폐까지 몰린 신세계건설이 6500억원이라는 거금을 영구채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8월 한화솔루션이 7000억원어치 채권을 찍기 전엔 국내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최대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이었다.

또 신세계프라퍼티도 지난해 3000억원 규모의 첫 신종자본증권을 찍었다. 신세계프라퍼티는 그룹 현금흐름의 중심이자 개발 주축이다 보니 자금조달에 항상 갈급한 계열사다.

현재 신세계그룹의 신종자본증권 잔액은 9500억원 남아 있다. 각각 신세계건설과 신세계프라퍼티가 발행한 채권이다. 특히 신세계건설은 앞으로도 영구채를 쉽게 털어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 행사기간이 3년인데 기한 내 상환여력을 확보하길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역시 최근 신세계그룹 못지 않게 바삐 움직이고 있다. 원래는 영구채 발행이 잦지 않았다. 롯데쇼핑이 2013년 처음 2700억원 규모를 찍고는 한참 발길을 끊었다가, 롯데칠성음료가 5년 전 1500억원을 조달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론 롯데컬처웍스가 1년에도 수차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있다. CJ CGV과 비슷한 처지다. 영구채 덕분에 자본잠식을 겨우 비껴갔다. 극장가의 대대적 불황 탓에 매년 순손실이 자본을 갉아먹고 있다.

달라진 발행 규모도 눈에 띈다. 그동안 300억원~500억원 남짓한 소규모 조달이 많았지만 올 2월 이례적으로 2000억원을 끌어왔다. 그만큼 사정이 급했다는 뜻이다. 자체 신용으론 모자라 롯데쇼핑이 자금보충약정을 섰다.


롯데지주 역시 올해 3500억원을 영구채로 마련했다. 분할합병 이후 첫 발행이다. 그룹 전반적으로 현금흐름이 좋지 못한 와중에 계열사 지원이 이어지면서 자본확충이 불가피했다. 롯데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설'이 퍼지면서 통합 기업설명회(IR)까지 나선 상황이다. 롯데지주도 롯데바이오로직스의 대출 9000억원에 대해 자금보충을 약속하는 등 추가적인 지원 부담을 떠안고 있다.

롯데그룹이 지난 10년간 발행한 영구채는 1조200억원이다. 그중 70%에 가까운 7000억원을 최근 2년 내 찍었다. 미상환잔액 역시 7000억원으로 동일하며 롯데지주가 3500억원, 롯데컬처웍스가 3500억원을 각각 나눠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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