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김화진칼럼]미니국가와 바티칸의 은행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12-16 09:00:02

이 기사는 2024년 12월 11일 13: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미니국가 리히텐슈타인이 있다. 풍광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같다. 리히텐슈타인의 남쪽 국경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살던 마이엔펠트와 접한다. 리히텐슈타인의 수도는 파두츠인데 인구가 6천 정도다.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될 때 독립했고 1866년에 공식화되었다. 왕가가 합스부르크의 봉신이었어서 줄곧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본가인 리히텐슈타인 성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4만 인구의 이 작은 나라에도 물론 은행이 있다. 열 개가 넘는다. 가장 큰 은행이 왕실 소유 LTG 그룹이다. 하버드 경영대에서 MBA를 한 막시밀리언 왕자가 은행장이다. 왕자는 뉴욕의 체이스맨하탄 사모펀드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이 작은 나라에 무슨 은행일까 하지만 본사는 파두츠에 두고 주로 스위스에서 활동한다. 사실상 스위스 은행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 프랑을 쓰는 나라다. 직원 3,500명에 전 세계에 지점을 두고 있다.

스위스는 그 측면에서 비슷한 나라여서 별 개의치 않는 것 같은데 대표적으로 독일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8년에 LTG의 한 직원이 400만 유로를 받고 독일인과 그 밖의 나라 고객들의 정보가 담긴 CD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보국에 넘겼는데 독일 정부가 그 고객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집행했다. 민형사 소송이 뒤따랐고 LTG는 5천만 유로에 합의했다.

아드리아해에 면한 이탈리아 동쪽 해안에 또 다른 미니국가인 산마리노공화국이 있다. 인구는 약 3만 5천으로 리히텐슈타인과 비슷하다. 울릉도보다 작다. 나라의 중심은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아드리아해가 내려다 보인다. 워낙 높아서 가리발디가 한때 피신하는 장소로 쓰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리미니가 가장 가까운 도시다. 독립 국가이고 UN 회원국이지만 이탈리아어를 쓰고 유로 도입 이전에는 이탈리아 리라화를 썼다. 경제와 문화에서 사실상 이탈리아의 일부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1815년 비엔나회의에서 독립국으로 인정된 나라다.

산마리노는 미니국가지만 리히텐슈타인처럼 조세피난처가 아니다. 중앙은행이 물론 있고 시중은행이 무려 8개가 있다. 산마리노은행은 1920년에 설립된 은행이다. 지점이 8개 있다. 종업원 수는 100명이 넘는다. 주주는 비영리법인이다. 리스파리모은행은 1882년 설립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150명 이상이 일하는 산마리노 최대 은행으로 16개의 지점을 두는데 크로아티아에도 지점이 있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도 은행이 있을까? 누구나 어마어마한 자산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바티칸은 금융을 어떻게 관리할까. 1942년에 설립된 IRO (Institute for Works of Religion)라는 기관이 ‘바티칸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바티칸 영토 내에 있다. 그런데 이 은행의 목적은 종교와 자선에 관련된 자산을 관리하는 것이다. 교황청에 직접 보고하는 5인의 추기경이 감독한다. 추기경들이 사외이사인 셈이다. 그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어서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은행’으로 불린다. 바티칸의 자산 규모는 일각에서 2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거기서 매년 600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하고 바티칸은 세금도 내지 않는다.

성스러운 기관의 은행이 자금세탁 스캔들에 휘말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다. 은행에서의 문제를 포함해서 바티칸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누가 처리할까. 일단 130명의 맨파워가 갖추어진 바티칸 경찰이 있다. 그런데 바티칸 경찰은 금융 범죄 같은 복잡한 사안은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1929년의 라테랑조약에 따라 이탈리아 경찰이 ‘협조’한다.

바티칸은행은 물론 투자도 한다. 1896년 밀라노에서 창업한 암브로시아노은행(Banco Ambrosiano)의 주요 주주였는데 이 은행이 1982년에 35억 달러 부채를 안고 도산해버렸다. 암브로시아노는 시칠리아 마피아에 자금세탁을 해 준 은행이다. 은행장을 맡았던 대주교가 형사소추되었다. 이 은행은 그전에는 미국 정부가 폴란드 독립노조 솔리다리티와 니카라구아 반군 콘트라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통로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았던 은행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