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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금융회사의 정치 사회 기여BBH와 로스차일드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5-04-15 08:52:08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3일 08시0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의도에서 만났던 어떤 증권사 사장님이 기억난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골프 한 라운딩에서 홀인원 두 번이라는 진기록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계였다. 기억은 잘되는 이름이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만(Brown Brothers Harriman: BBH)이었다.

연전에 보스턴 출장 때 랭햄호텔에 머물렀는데 아침에 호텔 문을 나와서 거리를 보니 바로 옆 사거리 대각선 방향에 BBH 점포가 보여 왠지 친근했다. 물론 본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있다. 38인의 파트너가 약 6천 명의 직원과 운영하는 프라이빗뱅크다. 미주, 유럽, 아시아에서 영업한다.
보스턴 중심가의 BBH 지점

1931년에 Brown Brothers와 Harriman Brothers가 합병해 BBH가 탄생했다. 새 회사는 16인의 파트너로 출범했는데 그중 11인이 예일대학교 출신이었다. 8인이 예일대 비밀 학생단체 Skull and Bones 회원이다. 태프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부자도 이 단체의 회원이었다. 맷 데이먼이 나오는 영화도 있다: The Good Shepherd (2006).

1934년에 글래스-스티걸법이 나오자 파트너들은 상업은행에 집중하기로 하고 프라이빗뱅크가 되었다. 자본시장 비즈니스는 분리해서 Harriman, Ripley and Company로 이관했다. 이 회사가 나중에 드렉셀(Drexel)과의 합병을 거쳐 1970-80년대 정크본드 시장의 주역이었던 Drexel Burnham Lambert가 된다.

창업 주역 W. Averell Harriman은 동생 E. Roland Harriman에게 회사를 맡기고 공직에 진출해 주로 외교 분야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보좌했고 소련대사, 영국대사, 상무장관, 뉴욕 주지사를 지냈다.역시 창업 멤버였던 프레스콧 부시는 상원의원을 지냈고 아들 (George H. Bush)과 손자(George W. Bush)를 미국 대통령으로 키웠다.

로스차일드는 1811년 런던의 뉴코트에 N M Rothschild & Sons를 설립했다. 지금 있는 Rothschild & Co의 전신인데 자리는 그대로다. 런던정경대학과 바로 이웃이다. 지금의 빌딩은 네 번째에 해당한다. 템스강 쪽으로 내려가면 킹스칼리지와 서머셋하우스가 있고 북서쪽 방향에는 영국박물관이 있다.

로스차일드도 공적 영역에 기여가 있다. 영국 로스차일드는 19세기 내내 글로벌 채권시장을 지배했는데 규모가 오늘날의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를 다 합친 사업 규모였다. 세계 각국 정부의 금융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 시대의 IMF라고도 부를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로스차일드가 영국의 연합국들에게도 금융과 자금을 지원했다. 1825년경에는 영국은행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의 현금도 보유했다. 1833년 영국 정부에 1,500만 파운드를 저리로 지원해 노예폐지법이 제정될 수 있게 한다. 노예 소유자들에게 줄 보상금이다. 2015년에야 다 상환받았다.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장남 라이오넬 로스차일드(1808–1879)가 영국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1875년 영국의 수에즈운하 최대 지분 인수 자금을 지원했고 현대에 와서 논란이 많아진 남아공의 다이아몬드회사 드비어스도 인수했다. 라이오넬의 아들 알프레드는 1869년에 영국은행 총재가 되었는데 20년 봉직했다. 1차, 2차 대전 후부터 로스차일드는 M&A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적 모습의 투자은행이 되었다.

2011년에 영국 비즈니스에 로스차일드의 대가 이어지지 않게 되자 프랑스 사업과 합쳤고 프랑스 대표 르네 데이비드 로스차일드가 양쪽을 이끈다. 이제 프랑스와 영국의 사업은 Rothschild & Co라는 이름으로 해서 세간이 덜 헛갈리게 되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약 4년 동안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때야 후일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로스차일드는 마크롱같이 국립행정학교를 수석으로 나온 인재가입사하는 곳이다. 로스차일드라는 브랜드에 끌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와인생산도 사회 기여일까? 로스차일드의 재산에는 150년 동안 지속했던 와인 제조업과 전 세계의 유명 샤토와 와이너리도 포함된다. 프랑스 보르도의 Château Mouton Rothschild가 특히 유명하다. 세 패밀리가 26곳의 이스테이트에서 132종의 로스차일드 와인을 생산한다. Château Lafite Rothschild의 1869년산 레드와인 세 병이 2010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각 233,973달러에 매각된 기록이 있는데 세계 기록이다.
로스차일드의 프랑스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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