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제도 대격변]초일가점 합리화? 기관 세력화 차단 '역부족'③가격 발견 기능 회복 의문…수요예측 기간 감축 촉구
권순철 기자공개 2025-02-03 08:01:54
[편집자주]
2024년 자본시장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뒤에도 국내 주식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5년 금융당국은 기업공개(IPO) 제도와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손질했다. 더벨은 이번 금융당국의 개선안, 특히 IPO 제도의 구체적인 변화 내용과 시장 반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5년 01월 24일 14시1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초일참여 가점제(초일가점) 개편을 예고했지만 의도대로 수요예측의 순기능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흘 동안 신중하게 가격을 검토하라는 취지이나 기관들은 이미 세력 군집을 이뤄 투표를 통해 공모가를 결정하고 있다.초일가점에 손을 대는 것보다 수요예측 기간을 이틀로 원상복구하는 쪽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각 기관이 서로의 전략을 답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부여됐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기형적 의사결정 체제가 고착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흘 동안 신중히 가격 검토"…가격 발견 기능 이미 '퇴색'
IPO 제도 개선안의 최대 화두는 단연 '초일가점 합리화'다. 초일참여 가점제는 기관들이 눈치를 보다가 수요예측 마지막 날 쇄도하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도입됐다. 1~2일차에 참여하는 기관에게 가점을 줘 공모주를 차등 배정하는 것인데 오히려 초일 쏠림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 당국이 바라보는 문제 의식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24년 초 상장 첫날 '따따블' 행진이 이어지면서 한 주라도 더 많이 배정받는 기관이 평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번거로운 밸류에이션을 거치지 않고 첫날 공모가 상단을 훌쩍 초과하는 가격에 주문을 써내는 것이 우월 전략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그러나 증권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제도의 취지는 결국 첫날 가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한 주문을 넣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관들이 합리적으로 가격을 써낼 수 있었지만 초일가점으로 그 유인이 퇴색됐다는 당국의 판단이 전제돼 있다. 이젠 가점을 분산했으니 가격 발견 기능도 회복될 것이란 기대 역시 포함돼 있다.
문제는 기관들이 이와 별개로 기형적인 형태의 의사결정을 거쳐 공모가를 산정해왔다는 데 있다. 각자의 밸류에이션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군집을 이뤄 밴드 상단 혹은 하단에 베팅할지 투표하는 식이다. 한 대형사 IPO 관계자는 "사실상 모든 딜의 수요예측 마지막 날, 텔레그램 등 단톡방에서 공모가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자체 밸류에이션 역량이 부족한 곳이 많아 '리더'격 기관의 전략을 답습하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밴드 하단이 무더기로 나온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후문이다. 다른 대형사 IPO 관계자는 "세력의 리더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건 오랜 관행"이라며 "상장 첫날 주가가 급락하니 모두가 하단 이하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기관 자격 강화 '반신반의'…"차라리 수요예측 영업일 원상복구"
물론 수요예측에 참여 기관들의 자격도 함께 강화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금융위는 사모운용사, 투자일임회사에 대해 강화된 고유재산 참여 자격을 펀드, 일임재산에게도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약 1900건에 달하던 기관 수요예측 참여건수는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얼마 만큼의 실효성을 낼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당국의 기준대로 고유재산 규모를 갖춘 기관이 집단 행동에 의존할 수 있고, 군집의 리더로서 집단 행동을 주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공감대가 이미 뿌리를 내린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상장예비기업들의 공모 전략도 분기점을 맞이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 주목도가 낮은 기업의 경우 당초부터 초일가점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가점이 나흘에 걸쳐 고루 분산되면서 기관을 유치하려면 더욱 공격적인 매력 어필이 불가피해졌다.
결과적으로 초일가점 합리화보다 수요예측 기간을 이틀로 원상복구하는 쪽이 차라리 낫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기간이 5일로 연장되면서 기관들이 서로의 전략을 모방할 수 있는 기회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IPO 실무진들조차 나흘 내내 기관들의 동태를 살피는데 자원을 총동원하느라 다른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부담은 더욱 크다. 한 중소형사 IPO 관계자는 "수요예측이 이틀이었을 때는 그래도 빠르게 공모가가 정해져 실무진의 부담이 크지 않았다"며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데 5일 동안 수요예측만 붙잡고 있어야 하니 피로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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