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8년 10월 02일 13: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 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시작된 이후 줄곧 불참의사를 나타내던 현대중공업이 돌연 태도를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해석은 분분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실사과정에서 대우조선의 영업 기밀을 빼내거나 인수전을 가열시켜 상대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아니겠느냐는 비판적인 관측마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몇 천억 원만 투자해 서너 개의 도크(배를 짓기 위한 터)를 짓는 게 (대우조선 인수보다)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인수전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실제 인수 의사가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 현대중공업 매출구성 (2007년 기준)
대우조선 인수전에서 현대중공업이 이렇게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은 자초한 측면도 있다. 민계식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인수 의사가 없다고 일관하다가 인수의향서(LOI) 제출을 전후로 의사결정을 뒤바꾸면서 신뢰를 잃었다.
사실 기업이 전략적인 의사결정의 공표를 유보하는 건 문제될 게 없지만 일관성 없는 태도로 업계 리더로서의 권위를 잃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최근 이수호 사장이 직접 나서 인수전 참여 의미를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기관투자가들은 현대중공업이 유보금을 조선업에 투입할 경우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보유지분을 처분하겠다는 의사을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도 현대중공업이 인수의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파업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안팎의 분위기가 현대중공업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1972년 울산의 작은 어촌에서 사업을 시작해 30여 년 만에 세계 1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 기업의 '창조적인 예지'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상보다 비판이 거세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참전을 결심한 배경에는 조선업에 대한 집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포스코와 GS, 한화 등 쟁쟁한 후보들이 있지만 M&A를 위한 목적에서 현대중공업과는 구별된다. 나머지 3개사가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나 사업영역 확장, 규모의 경제를 시너지 요인으로 삼고 있는 데 비해 현대중공업만이 수평적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M&A로 몸집을 불리려는 게 아니라 핵심사업(Core business) 확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셈이다.
맥킨지나 보스턴컨설팅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억 달러 이상의 빅딜(Deal)이 성공할 가능성은 의외로 30%를 넘지 못한다. 인수 후 두 회사의 주주가치는 대부분 미숙한 사업경험과 사후 조직통합(PMI) 문제로 전보다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M&A가 핵심사업의 확장 목적이거나 피인수 기업(Target)이 인수 기업보다 덩치가 작을 때는 성공률이 과반이다. 조직운영 노하우와 사업전망을 인수 기업이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어 인수 시너지가 증대된다는 분석이다.
현대중공업이 조망하는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사실상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중국이 벌크선 등 제조가 비교적 용이한 제품으로 기술을 축적하며 뒤쫓고 있고 STX 등 국내 일부 조선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해외 기지를 구축하면서 핵심기술도 빠르게 이전되고 있다.
조선 경기의 호황이 예상 외로 오래 지속되면서 중소 조선사들이 성장했지만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자산 가치 하락이 실물로 전이되면 1~2년 내에 시황도 나빠질 것이란 결론이다.
공정관리나 신기술 개발 등에서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20%까지 목표로 했던 영업이익률도 허망하게 무너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7%를 넘겼던 현대중공업의 이익률이 최근 하향세를 맞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다른 조선사들의 미래도 불확실해 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을 정점으로 △목포 기지(현대삼호중공업)의 특화 △군산 조선소 건립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조선업 공동화를 막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겠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미래에도 확고한 글로벌 리더로 자리잡겠다는 것이다.
후보평가 항목에 있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할 비계량 요인의 투자논거(Investment Thesis) 측면에서는 경쟁 우위가 탁월한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인수금으로 필요한 5조원 이상을 재무적투자자(FI) 없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부족분은 회사채 발행으로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FI들은 수익기회를 놓쳐 아쉽겠지만 비용 절감치는 통합회사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 현재 신용도(AA+)에 절세효과(Tax shield)를 고려하면 인수금융을 5% 이하의 금리에 조달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다.
국내 조선업계 시장구도 | ||||
기 업 | 2008년 반기 | 2007년 | ||
수주량 | 점유율 | 수주량 | 점유율 | |
현대중공업 | 9,257 | 38.20% | 12,150 | 24.30% |
대우조선해양 | 3,984 | 16.50% | 9,688 | 19.40% |
삼성중공업 | 3,260 | 13.50% | 9,841 | 19.70% |
기 타 | 7,700 | 31.80% | 18,311 | 36.60% |
계 | 24,201 | 100.00% | 49,990 | 100.00% |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대우조선 인수에 따르는 독과점 시비 문제가 경쟁사들로부터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출산업인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해 수요 시장을 전 세계로 확대하면 문제가 없지만 선주들이 몰려있는 유럽연합(EU)이 제재를 할 여지가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이런 가능성에 대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제법적 대응 조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STX의 아커야즈 인수 사례에서 보인 EU의 태도는 호의적이지 않다.
여기에 회사 측이 구상하고 있는 대우조선 인력의 재배치와 이에 따르는 피인수 직원들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거제도를 중심으로 터전을 잡아온 기술 인력들의 근속연수는 평균 20년 이상이다. 현대중공업이 업계 최고의 보수를 약속한다고 해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지가 미지수다. 거제도를 양분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견제도 고민이고 울산 인력과의 조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지도 과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대우조선 인력의 자존심과 긍지를 존중하면서 양사의 장점을 조합할 복안이 있다"며 "20년 후에도 조선업과 해양산업을 중심으로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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