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카드, 너무 쉽게 쓴 대가는… 경기침체 장기화되면… '유동성 함정' 경계해야
이 기사는 2009년 02월 16일 16: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의 0.50%포인트 금리인하는 한마디로 깜짝쇼였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그정도 선물까지 바라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날의 결정은 지난해 10월 0.75%포인트 내릴 때보다 더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한은은 경기 침체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아까운 카드를 너무 쉽게 버렸다. 경기침체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기준금리는 이미 바닥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국채매입과 같은 양적완화정책에 한은과 시장 모두가 더 매달릴 수 밖에 없다.
◇ 공연히 0.5%포인트 낭비했나
2월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선제적'이라고 칭찬하는 이가 정부를 포함, 몇이나 될까. 기준금리를 내리면 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하고 가계나 기업이 쓸 수있는 돈이 늘어나 죽어가는 내수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금리인하의 배경이었다.
금융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은행엔 부실채권이 점점 쌓여가고 BIS비율은 하락 위험에 처해 있다. 적극 대출에 나서기는 커녕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저금리 시절 대출경쟁을 하며 사상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던 잔치는 이미 끝났다. 차입자들의 상환능력이 가파르게 저하되고 있는데 대출을 늘린다는 건, 떼일 작정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한은이 넉 달 동안 3.5%포인트나 금리를 인하했지만 대출금리 하락은 더디고 대출총액은 늘지 않았다. 1월중 대출이 4.2조 증가했지만 지난해 12월에 5조원이 준 것을 감안하면 대출이 늘지 않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지만 금융중개기능이 위축된 점은 한은이 더 잘 알고 있다. 공연히 0.50%포인트의 기준금리를 낭비한 꼴이다. 아껴쓰면 긴요할 때 최대 두 번을 쓸 수 있는 카드였다.
기준금리도 바닥에 거의 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1.50%를 마지노선으로 본다. 더 내릴 수도 있지만 1.0% 아래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세 콜금리가 사실상 제로(0)에 도달하게 된다.
이 총재도 "경제활동이 극히 위축될 때는 실질 수익이 '0'이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기대라든가 인플레이션 보상이나 위험보상은 '0'으로 가긴 어렵다"며 "그런 요소가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통화정책이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할 수 있지만 폭은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 유동성 함정 논란, 잠재우기 어려울 것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다소 성급한' 유동성 함정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대폭 내렸는데도 왜 장기 금리가 떨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총재는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장기채권과 비우량 채권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고 있는 것은 '급속한 금리조절과정에서 나타난 마찰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동성 함정 논란은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실물경제 전망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불과 두어달 전만 해도 올해 하반기만 되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외 어디서도 그런 전망은 찾아볼 수 없다. 위험한 신호는 갈수록 잦아지고 있고 그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 이어 또 하나의 경제 대국이자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경제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영국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이 총재도 "앞으로 전 세계나 우리나라 경제로 보면 아주 뚜렷하게 언제쯤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털어놨다.
당장 3~4월 국내 경제지표들이 걱정이다. 취업을 하지 못한 대졸자들이 쏟아져 나오면 고용지표의 추가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급격하게 악화된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최종 확정돼 나온다. 대다수 기업들이 예산축소와 비용절감 등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와 더불어 적극적인 양적 완화정책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거나 회사채를 사들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기금리는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축소와 비용절감에 나선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투자를 늘릴 수 없을 것이고, 소득이 줄어든 개인들이 소비를 늘릴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최소한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보면 장기금리가 하락해도 경기회복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달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느니 '두고 보자'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중앙은행의 금리인하가 추락하는 경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는 없다. 그러나 0.5%포인트의 기준금리를 남겨 뒀으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경기 하강 속도를 늦추거나 상승 반전의 자극제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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