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9년 04월 13일 14: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아직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주가지수가 환율보다 더 높은 시절’이 마침내 도래했다. 지난 주말(4월 10일) 코스피는 1,336.04로 마감, 작년 10월 27일 장 중 저점(외환위기 이후 최저지수)이었던 892.16 대비 무려 49.8%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달러/원 환율은 1,333원으로 마감, 3월 6일 장 중 고점(1998년 3월 이후 최고치)이었던 1,597원보다 무려 264원 낮아졌다(한 달 사이 원화의 달러대비 절상율은 19.8%).
주가급락과 환율폭등에 여기저기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렸었는데, 이 정도 주가급등과 환율하락이면 시장에서는 이제 환호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별로 그렇지 못하다. 첫째 이유로는 시장에서 버는 자들은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면 그게 곧 돈 잘 벌고 있다는 의미인 것처럼 최근 장에서 큰 돈 만진 사람들은 “벌긴 얼마 벌었다고 그래…… 수수료로 다 나가고 중간중간 터진 것도 있고 해서 번 거 없어”하며 표정관리에 나서기 마련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주가가 더 떨어지고 환율이 더 올랐을 경우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다행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주가와 환율로도 “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래서 행복하다” 고 여길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헤지(hedge)는 헤지에 그쳐야 하건만 헤지 차원을 넘은 오버헤지(over-hedge)가 화를 불러왔고, 시장흐름 뒤늦게 쫓아가면서 헤지를 풀다(unwinding) 상처만 남았으며, 제 때 손절매(stop-loss)를 단행하지 못했다 보니 벌어서 기분 좋을 일은 없고 막대한 손실이 좀 줄어들어 본전에 가까워진 것으로 위안 삼아야 하는 현실에 여전히 갇혀있기 때문이다.
◈ ‘헤지’하겠다고 했으면 헤지만 하자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은 그 명칭에 보험이란 단어가 들어있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있지만, 중소기업들에게 있어서 환리스크 헤지 툴로는 이만한 게 없다 할 만큼 완벽한 상품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보험공사로부터 돈을 받는다. 일종의 환차익이다. 그러나 결국 수출대금으로 수령한 달러를 그 동안 떨어진 환율에 내다 팔아야 하니 애초에 환변동보험에 가입할 때의 약정환율로 수출대금을 처리한 것에 비해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환율이 올라 오히려 수출보험공사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오른 환율에 수출대금을 환전하니 이 때도 약정환율에 달러를 판 결과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선물환(Forward) 계약이나 통화선물(Futures) 거래를 통한 환리스크 헤지 메커니즘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도 수보공으로부터 돈이 입금되면 번 것 같고 수보공에 돈을 지급하면 손해를 본 것 같다면 도토리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줄까,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줄까에(朝三暮四) 헷갈려 하고 고민하는 원숭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왜 환변동보험 들었다가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다는 소리가 들리는가? 선물(환) 거래에서의 손실을 현물환 거래에서 보전해야 하는데, 선물(환) 거래에서 더 많이 팔았기 때문이다. 100만 달러 수출 중 원자재 수입이 50만 달러를 차지한다면 그 차액인 50만 달러에 대해서만 매도 헤지를 해야 하는데, 수출대금 100만 달러 전액을 헤지했고 50만 달러는 연지급수입(usance)으로 돌렸다. 거기에다 환변동보험 제도에서 허용하는 최대한의 한도를 남김없이 쓰다 보니 오버헤지에 또 오버헤지가 더해진 곳도 있다. 이쯤 되면 ‘헤지’가 아니라 환율은 무조건 떨어진다고 보고 베팅하는 ‘투기(speculation)’로 규정해야 한다.
열심히 팔았던 은행도, 기꺼이 혹은 마지못해 샀던 기업도 더 이상의 언급을 꺼려하는 키코(KIKO) 통화옵션 거래까지 따져보자면 더욱 심각하다. 행사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는 풋옵션은 하나만 사고 행사가격에 달러를 살 수 있는 콜옵션은 두 개 이상 팔았다면(풋옵션도 사고 콜옵션도 산 것이 아니라 ‘풋’은 사고 ‘콜’은 팔았다) 이건 “나는 환율이 무조건 떨어진다고 믿는다!”라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환율하락에 대한 헤지가 아니라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여 투기거래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그리고 투기거래자는 가격이 전망과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 손절매 원칙을 지켜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甲은 주가지수 2,000에 1억원을 투자하였다. 지수 1,800에 손절매를 단행했다. 약 20% 손실이 나면서 8천만원만 건졌다. 이후 주가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더니 1,000도 깨고 900도 잠시 붕괴되었다. 2천만원 손해를 보았지만 이렇게 다행스럽고 기분 좋을 수 없다. 그러던 주가가 다시 1,000을 회복하기에 남은 8천만원을 다시 투자하였다. 우여곡절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견딜 만해서 계속 들고 있었더니 1,300에서 차익실현 할 기회가 왔다. 얼추 30%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2천 4백만원을 벌었다. 애초의 투자원금 1억원을 복구하고도 4백만원은 벌어 예금이자 정도는 남겼다.
乙도 주가지수 2,000에 1억원을 투자하였다. 그런데 타고난 성격상 손실을 확정시키는 손절매 거래에는 도저히 손이 안 나간다. 주가가 1,800으로 1,500으로 점점 더 떨어질수록 얼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간다. 어어 하는 사이에 1,200도 깨지고 1,000도 깨졌다. 그런데 얼굴은 1,500 붕괴 여부로 가슴 졸일 때보다 오히려 더 편안해져 있다. 그게 사람이다. 마침내 주가의 반등이 시작되어 1,300도 회복했다. 방송에서는 저점 대비 40% 이상 주가가 올랐다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의 보도가 들린다. 그러나 乙은 5천만원, 4천만원까지 추락하던 통장잔고가 6천 ~ 7천만원 정도로 회복된 데에 불과하다. 물론 주가가 1,000 아래에서 헤맬 때보다는 훨씬 살 만하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배어있다. 거기에다 甲이 벌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부터는 살 맛이 안 난다. 그게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장에서 거래하다가 손절 못 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 ‘起承轉結’의 ‘전(轉)’에 임하여
귀한 지면을 빌려 너무 뻔한 소리만 하면서 독자의 시선과 시간을 뺏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듣고 보면 너무 뻔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그리고 전 세계 모두) 지난 수 년간 원칙을 위배하며 살았다.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내놓는 ‘위기대처 방안’은 어떻게 보면 고통스러운 손절매 단행을 미루거나 생략한 채 좋은 시절 맞아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기(起)였다면 그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승(承)이다. 그리고 지금은 최대한 금리를 낮추고 새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어지간한 부문에서는 민간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정부가 대신 떠안으면서(결국 후대가 책임지면서) 이 위기를 타개해보자는, 그래서 시장도 그러한 노력에 반응해보자는 전(轉)의 단계다. 문제는 결(結)의 모습이나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
코스피 1,300과 달러/원 환율 1,300은 상당히 중요(critical)하다. 여기서 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저 그런 수준의 소설이나 드라마라면 뻔한 ‘기승전결’을 독자와 시청자들도 미리 짚어내겠지만 이번에는 그 간의 ‘起’와 ‘承’이 예사롭지 않았던 데에다 지금 목격하는 ‘轉’도 쉽게 그 여파를 짐작하기 어려운 때다. 헤지는 헤지에 그치고 손절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는 시장에서의 장수(長壽) 비법을 한 번쯤 되새겨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칼럼니스트 소개]
[주요경력]
2002년∼현재 NH투자선물 리서치 팀장 및 기획조사부장
2000년∼2002년 농협중앙회 국제금융부 원/달러 트레이딩
1995년∼1999년 한화종합금융 국제금융부 딜링룸 헤드
1990년∼1995년 한국종합금융 국제금융부 외화대출 및 딜링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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