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0년 09월 08일 09: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준비가 부족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법이다.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다 보면 운 좋게 '실패'는 면할지라도, 결국 기대했던 결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펀딩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한책임투자자(LP)는 펀드출자에 앞서 투자 수익구조를 점검하고, 미리 출자 신청 수요를 파악해 둬야 한다. 만약 이런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금이 풍부한 LP라도 펀드조성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올해 벤처 펀딩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경우가 그랬다.
방통위는 지난 6월 ‘모태2차조합’에 LP로 참여했다. 2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하고 이중 100억원을 출자키로 했다. 방송콘텐츠 분야에 관심 있는 무한책임투자자(GP)들의 참여가 줄을 이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시간벤처캐피탈과 비케이인베스트먼트 두 곳만 출자 신청을 했다. 첫 번째 출자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초라한 성적이었다. 특허 계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모태펀드 계정은 최소 3~4배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비케이인베스트먼트가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실질적으로 적격심사를 받은 곳은 미시간벤처캐피탈 한 곳에 그쳤다. 결국 미시간벤처캐피탈은 방통위 자금 50억 원을 지원받았다. 나머지 방통위 계정(50억 원)은 '모태3차조합'으로 이월됐다.
지난 달 출자 공고된 '모태3차조합'에는 모태펀드가 직접 방통위 계정 GP 유치에 나섰다. 많은 벤처캐피탈들과 접촉해 출자신청을 권유했다. 벤처 펀딩시장의 '갑'이 '을'을 설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출자신청 마감일인 지난 3일까지 방통위 계정에 참여한 벤처캐피탈은 단 한 곳뿐이었다. 이번에도 이 회사는 '단독 심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왜 국내 벤처캐피탈들은 방통위 펀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LP로는 이례적으로 우선손실충당금을 일부 설정하면서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는 리스크를 조금 줄이는 데 불과했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 투자구조가 아니었다.
펀드조성이 시급한 중소형 및 신규 벤처캐피탈들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방통위 펀드는 시장에서 자금매칭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운용수수료 욕심 때문에 신청했다가 나중에 펀드결성에 실패라도 하게 되면 회사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방통위 펀드가 '인기 없는 펀드'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잘못은 방통위 자신에게 있다. 시장에서 매력적으로 판단할 만한 펀드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 문화부와의 투자영역 충돌로 인해 드라마 등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사업으로의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수익구조가 불안정했다. 다른 LP를 끌어들일 만한 유인도 부족했다.
물론 방통위의 펀드출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LP가 부족한 국내 벤처 시장에 풍부한 자금원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방통위는 이점이 부족했다. 시기를 늦춰서라도 시장이 원하는 펀드를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GP들의 관심사가 펀드레이징인 시기에, 칼자루를 쥐는 것은 LP라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이 때, 방통위 펀드에 대한 시장의 외면은 'LP와 펀딩의 기본'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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