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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사로잡은 예술]남산을 품은 외톨이 소년…운보 <청록산수>에 꽂혔다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는 나의 자랑"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18 08:50:21

[편집자주]

예술 작품에는 무한한 가치가 녹아있다. 이를 알아본 수많은 자산가, 기업가들의 삶에서도 예술은 따뜻한 벗으로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더벨은 성공한 CEO들이 미술품 컬렉터로서 어떻게 미술의 가치를 향유하는지, 그의 경영관, 인생관에 예술품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터뷰를 통해 풀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4일 11: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한국 미술계 컬렉터들 중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인으로는 가장 먼저 아트넷이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국내외 작가 4700여점에 달하는 컬렉션을 개인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기업가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서울 공간 사옥을 인수해 미술관으로 바꾼 것, 제주도의 폐관 극장 등 버려진 공간을 미술관화시킨 이야기 등 김 회장에게 무궁무진한 히스토리가 따른다. 부동산 투자가치를 추구한다는 식의 부정적 시선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문화 자산을 보전하며 오랜기간 꾸준히 공적 역할을 해냈다는게 미술계의 평가다.

김 회장은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식음료점을 운영하는 대성한 기업인이다. 맨손으로 천안에 내려와 사업을 시작, 터미널을 만들고 백화점을 일구는 등 기업가로 기반을 닦은 그는 갤러리, 미술관 사업에 도전하고 또 작가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 모든 변신의 원동력은 결국 컬렉터로서 갖게된 예술에 대한 깊은 애호였다.


씨 킴(CI KIM, 김창일 회장의 영어이름) 개인전 '레인보우' 전시장에 선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김 회장과 만나기 위해 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탄 순간부터 천안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가 드러났다. 목적지로 아라리오 갤러리를 부탁하자 택시 기사는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타지 손님에게 꼭 추천하는 명소"라며 공원에 놓인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줄줄 읊었다.

그는 "코헤이나와의 조각상,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찬가> 같은 조형물을 천안 버스터미널과 아라리오 소유의 신세계천안점, 아라리오 갤러리로 이어진 광장에서 볼 수 있다"며 "김창일 회장은 천안에 와서 굴곡이 많았지만 천안 사람들의 문화 수준을 한번에 점프시켜 줬다"고 자랑했다.

Q. 눈길을 사로잡은 첫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A. 운보 김기창 선생의 <청록산수>가 생각난다. 나는 운보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게 1978년이다. 지금도 김기창 선생 그림 수백점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도 옥션에서 <청록산수>를 샀다. 끊임없이 사고 있다.

김기창 선생을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 있다.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 청전 이상범 선생 모두 그림을 잘 그린 분들이다. 과거 일본인들이 한국 작가를 뽑을 때 당연히 그림 좋은 사람을 뽑았을 거다. 당대 최고 작가를 뽑아 앞세웠던 것이다. 실제를 따져보지도 않고 친일파라 손가락질 하는 게 안타깝다.


운보 김기창(Kim KiChang, 1913-2001), 청록산수(모내기), 1988, 비단에 채색, 120x63cm, 아라리오컬렉션


Q. 김기창 선생 <청록산수>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렸나.

A. 어릴적 회현동에 살면서 남산을 자주 올랐다. 울타리 넘어 들어가 혼자 있으면 <청록산수> 그림 녹색 풍경이 거기 있었다. 김기창 선생이 그림 그릴 당시 동양화에 색깔을 쓴다는 건 금기사항이었다. 수묵이 주였다. 그런데 그분은 청색을 사용했다. 내 머릿 속 남산의 풍경이 그 그림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필력, 소재가 나와 잘 맞았다. 운보 그림의 사람, 산수는 모두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 있다.

Q.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미술 전공자도 아니었고 전문 컬랙터도 아니셨는데, 예술품을 소유하고 컬렉션을 꾸리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A.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모았고 스스로 그리게 됐는데, 언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돌발 행동을 잘 한다. 천안에 처음 내려온 그해에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그림을 만나고 그림 수집이 시작됐다. 그러다 어느날 날 보고 세계 100대 컬렉터라고 하더라.

최근 그림 열 점을 샀는데 그 중 남관의 작품과 운보의 청록산수는 옥션에서 샀다. 옥션에서 살때 내가 직접 얼마까지 응찰할지 오더를 내린다. 5년 후 내가 만들 또다른 미술관에 그림들을 놓고 싶다.

Q.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보다도 먼저 한국인으로 세계 100대 컬렉터 리스트에 올랐다.

A. 그건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 중 한 분이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님이다. 과거 호암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만났는데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림을 그리고 컬렉션을 하게된 것에 그 분의 영향도 있었을 거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사옥에 있는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의 개인 작업공간.

Q. 예술품이 삶에 들어오고 인생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내 품격을 높여 준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마누라, 하나는 미술이다. 미술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열등감도 심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내 가장 나쁜 병이 양면성이다. 만약 그림을 안 그렸으면 내 병이 더 깊어졌을 거다. 사업하며 나도 모르게 강한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힘들다. 그런 내가 미술을 다루는 사람이 된게 믿기지 않는다.

컬렉션은 하나의 습관이다. 힘들 때 습관이 생긴다. 어떤 이는 마약을, 도박, 등산에 빠진다. 어떤 이는 미술품을 보고 문화를 향유한다. 컬렉션은 문화의 향유이고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내가 가진 무언가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더 좋은 세계로 들어갈 통로다. 예술을 투자로 접근하면 상품이 될 뿐 내 인격을 높일 수단이 되진 못할거다.

Q. 천안 택시를 탔는데 아라리오 덕분에 천안의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A. 아무도 없는 천안에 내려와 사업을 일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고통이 뒤따랐다. 1978년 스물여덟에 망해가던 사업체를 1년도 안돼 억대를 버는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역전에서 10년 일했다. 1988년 2만평 부지에 250억원을 들여 버스터미널을 지으려했다. 처음엔 부동산 투자하려 한다고 손가락질 많이 받았다.

터미널 사업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름다운 꽃을 심으면 벌이와서 꿀을 만들고 더러우면 파리가 와서 전염병 옮기듯 내가 아름다운 곳을 만들어야겠다고. 더러운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 부터 한단계씩 밟았다. 다 만들고 나니 어느 순간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더라.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b.1965), 채러티(Charity), 2002, 브론즈에 아크릴 페인트, 6.8(h)x2x2m, 아라리오컬렉션

Q. 해외 작품을 특히 많이 보유한 컬렉터로 유명하다. 운보의 그림 외에 또다른 최애 애장품을 꼽아본다면.

A.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그 앞에서 항상 "I am proud of myself(내 자신이 자랑스럽다"라고 얘기한다. 과거 영국에서는 우체국 앞에서 12월 말 우표 씰을 판매하면서 1미터 조금 넘는 인형 자선모금함에 잔돈을 넣게 돼 있었다. 자선모금의 의미가 담긴 <채러티>가 내가 하는 이곳 비즈니스 현장에 놓여있다.

또 하나 꼽자면 2003년 경 만난 영국작가 마크퀸의 <셀프>다. 5년간 자신 몸의 피를 조금씩 모아 자기 얼굴을 본떠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가 컬렉션을 하면서 예술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내 몸에 있는 피, 내 얼굴, 즉 내 자신과 관계된 것으로 예술이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그 작품이 다가왔다. 예술이 학습을 통해 남에게 배우는 것이 아닌, 나에게서 시작한 거구나 알게 됐다.
Marc Quinn Self, 2001. 아라리오컬렉션

Q.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예술은 우리 자손에게 더 좋은 격을 갖춰주는 거다. 10년 20년 오래 가꿔야 결과가 피어난다. 자연, 생명, 영혼이 나의 주제다. 제주도 처럼 문명이 아니라 자연이 발달한 곳에 어떤 거리를 만들고 싶다. 탑동 아라리오로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진행 중인데, 생명과 영혼에 가장 맞는, 식물들을 활용해 조경이 잘 된 미경을 만들고 싶다. 100만 평의 숲속을 거닐며 예술품을 보고 사람들이 품격을 높이는, 또다른 자연 속의 뮤지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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