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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넘 메가펀드 뉴리더십]‘일당백’ 박은수 전무, ‘펀드레이징 전략가’ 역할 강화⑨공채1기 원클럽맨, 미들·백오피스 체계 정립…넥스트 펀드 준비 나서

최윤신 기자공개 2024-03-25 08:31:31

[편집자주]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국내 벤처 캐피탈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 원펀드 전략을 바탕으로 VC펀드의 규모 대형화를 이끌었고, 지난해말 8600억원 규모의 펀드 결성으로 새 지평을 열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86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펀드를 운용하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리더십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하우스는 지난해 말 인사 및 조직개편을 통해 진용을 재정비했다. 더벨이 메가펀드 시대 ‘에이티넘 웨이’를 만들어 갈 뉴 리더십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2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은수 경영지원총괄(전무·사진)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메가펀드 시대를 연 숨은 주역이다. ‘원클럽맨’으로서 미들·백오피스의 모든 일을 전담하며 ‘일당백’ 역할을 해왔다. 특히 원펀드 전략을 구사하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매번 벤처펀드 최대규모 기록을 경신하기까지는 그의 혁혁한 공헌이 있었다.

메가펀드 시대가 개막하며 그의 역할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심사역 충원에 걸맞게 미들·백오피스를 강화하며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경영지원총괄로서 박 전무는 체계를 만드는 동시에 펀드레이징의 스페셜리스트로서 다음 펀드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맡았다.

◇신규 LP공략 첨병…메가펀드 숨은 주역

박 전무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공채 1기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회사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당시 한미창업투자)다. 금융권 취업을 위해 공고를 기다리다가 채용공고를 보고 덜컥 지원했고,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입사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벤처캐피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일단 취업해 금융 관련업무 경험을 해보고 향후 은행 등으로 옮겨가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입사 후 펀드관리와 투자업체 사후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는데, 꽤 재미를 느꼈다. 소수 관리역이 운영하는 특성상 다양한 업무 스펙트럼을 맡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여겨졌다. 특히 소수 정예로 운영되던 가족적인 회사의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일 욕심이 많았다. 조합관리·투자업체 사후관리에 그치지 않고 리스크와 컴플라이언스 업무도 맡았다. 업무상 계약과 관련한 법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사실상 심사역들의 투자업무를 제외하곤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쳤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상장회사다보니 더해지는 업무도 많았다. 2008년부터 전무가 된 현재까지 불변의 사업보고서 작성책임자다. 이밖에 무형의 역할도 많다. 사내 직원들의 고충 상담이나 중재 역할 등도 맡고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많은 일을 맡았지만 가장 열정을 쏟은 업무는 단연 ‘펀드레이징’이다. 주니어 시절부터 미들·백 오피스의 구분이 없이 많은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펀드레이징도 그의 업무가 됐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운영하던 펀드는 많지 않았다. 모태펀드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완전히 민간자금으로 펀딩을 해야했기 때문에 규모도 100억원 미만이 대다수였다.

연기금이 2002년부터 벤처조합에 출자하기 시작하면서 벤처조합 규모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출자사업에 적극 지원하며 펀드 규모를 늘려갔다. 2005년 모태펀드가 생겨나면서 펀드 대형화에 속도가 붙었다.

2008년 450억원 규모의 한미그로스에쿼티투자조합을 결성했고, 이듬해에는 400억원 규모의 한미신성장녹색벤처조합 결성에도 성공했다. 2005년 합류한 황창석 사장의 활약 등으로 이 두 펀드가 크게 성공을 거뒀고, ‘원펀드 전략’의 기반이 됐다.

2010년 사명을 고쳐 달고 원펀드 전략 실행에 본격 나섰다. 2011년 에이티넘팬아시아투자조합을 1057억원 규모로 결성에 성공하며 국내에서 처음 1000억원대 벤처조합을 만드는 기록을 썼다. 박 전무는 “결성 1년 전부터 펀드의 컨셉과 투자전략을 짜고 출자자들을 공략했다”며 “처음엔 1000억원대 펀드 결성이 정말 가능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매번 펀드레이징은 도전적이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원펀드가 매번 최대규모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었던 건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한 적이 없는 신규LP를 지속 끌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매 펀딩마다 기존 LP의 재신임에 더해 신규출자자가 더해지며 펀드 규모가 늘어났다.


물론 ‘처음’을 개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되는 건 없다’는 신조로 LP를 찾아가 만나고 설득했다. 그 스스로도 원펀드 전략의 방향성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LP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펀딩 혹한기였던 지난해 결성한 메가펀드는 지금까지 그의 커리어에서도 가장 도전적이었다. 1년 전부터 철저히 전략을 수립하고 2022년 펀드레이징에 돌입했지만 가혹했던 시장 위기가 찾아왔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증액하기로 했던 일부 출자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펀드레이징이 상당기간 전면 멈추기도 했었다.

목표로 한 8000억원을 맞추는 게 어려운 시장 환경이었지만, 결국 연말 멀티 클로징을 통해 결국 목표치를 초과한 8600억원을 달성해냈다. 그는 “출자해 준 LP들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를 꽉 깨물고 임했다”고 말했다.

◇미들·백오피스 대거 강화, 경영지원총괄 맡아

메가펀드 결성은 박 전무의 커리어에도 변곡점이다. 펀드레이징을 마친 뒤 혁혁한 공헌을 인정받아 전무로 승진했고, ‘경영지원총괄’이란 직책도 주어졌다. 주어진 직책은 일견 백오피스의 총괄 업무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맥락을 고려하면 그에게 펀드레이징의 스페셜리스트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22년부터 백오피스의 인력을 대거 충원했다. 펀드관리와 인사총무 등을 담당하는 인력만 8명으로 늘어났다. 준법감시 부문에는 미국 변호사인 박선영 상무와 한국 변호사인 김형선 이사를 영입하는 등 4명의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소수의 인력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며 담당했던 업무를 체계화·세분화 하는 게 그에게 맡겨진 과제다. 중장기적으로 박 전무가 관여하지 않아도 원활하게 업무가 진행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박 전무에겐 펀드레이징 전략가로서의 역할이 더 강조될 전망이다. 차기 펀드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뿐 아니라 해외출자자를 모집하는 펀딩을 추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도 있다. 그는 이미 잠재 출자자 리스트를 만드는 등 차기 원펀드의 펀드레이징 전략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박 전무는 “그간 벤처조합에 출자하지 않던 신규 LP들로부터 출자를 받으며 벤처캐피탈 업계의 LP 저변을 넓혔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들을 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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