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 긴박했던 '부실채권' 매각 타임라인 고파이 상환 위해 할인가에 처분…채권가격 상승 '난감'
노윤주 기자공개 2024-05-30 07:23:39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9일 07: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스트리미)가 지난해 매각한 FTX 관련 부실채권 가격이 상승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팍스는 가상자산 예치이자 서비스 '고파이' 미지급금 일부를 상환하기 위해 부실채권 전문 운용사에 이를 매각했다. 할인된 가격이었다.가상자산 장세 회복으로 채권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고파이 투자자 중 일부가 당시 결정에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고팍스와 최대주주 바이낸스는 당시로서는 채권 가격 상승을 예측하기 힘들었고 미지급금 상환이 최우선이었기에 내린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의사결정을 담당한 이중훈 전 고팍스 대표는 이미 작년 8월 회사를 떠났다. BF랩스(옛 시티랩스) 출신 조영중 대표가 상황을 수습 중이다. 급박하게 결정이 이뤄졌던 당시 상황을 타임라인 순서대로 정리해 봤다.
◇FTX 파산 연쇄작용 타격…유일한 구원투수 바이낸스 손잡아
2020년 12월 고팍스는 '고파이'라는 가상자산 예치이자 서비스를 내놨다. 고객이 가상자산을 맡겨두면 이를 운용해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는 서비스였다. 미국 블록체인 투자사 겸 지주사 디지털커런시그룹(DCG) 산하 제네시스 캐피탈이 운용을 맡았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인 2021년 5월 고팍스는 DCG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다. 이 투자로 DCG는 고팍스 2대주주(13.9%)에 등극한다. DCG는 가상자산 업계 큰 손이었다. 코인 투자사 그레이스케일과 운용사 제네시스 캐피탈 글로벌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고팍스로서도 DCG 투자를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2022년 11월 터졌다.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가상자산거래소 FTX가 지급불능을 선언하며 갑작스럽게 파산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FTX에서 가상자산거래를 하던 제네시스도 돈이 묶이면서 덩달아 파산을 신청했다. 동결된 제네시스 자금은 1억7500만달러(약 23880억원)으로 알려졌다.
제네시스 파산 여파는 고파이로 이어졌다. 고파이 자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당시 시세로 500억원이 넘는 고객 가상자산의 발이 묶였다. 고팍스 설립자인 이준행 전 대표는 서비스 제공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면서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겠다 선언했지만 고팍스는 자금력이 부족했다.
이때 등장한 곳이 바이낸스다. 바이낸스는 그 전부터 국내 거래소 한 곳을 인수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바이낸스와 이준행 대표를 포함한 고팍스 공동설립자(주주)들은 지분 매각 계약을 체결한다.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인수하고 고파이 상환 자금을 지원해 주는 조건이었다. 부수적으로 규제 당국이 바이낸스 진입을 불허한다면 딜이 성사되지 않는 조항도 추가했다.
독소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내서는 사면초가에 직면한 고팍스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가상자산거래소는 벤처기업 제외대상으로 금융권 차입도 불가능하다. 바이낸스만이 고팍스의 유일한 구원투수였다.
◇퇴사한 전 대표, 고파이 2차상환금 마련 위해 제네시스 채권 처분
2023년 1월 바이낸스는 산업회복기금(IRI)을 통해 고팍스에 약 150억원을 투입해 고파이 1차 상환을 단행했다. 기부는 아니다. 이 자금은 고팍스 재무제표에 장기차입금으로 반영돼 있다.
고파이 2차 상환은 같은 해 8월 진행했다. 당시 대외적으로 바이낸스가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달랐다. 고팍스는 보유 중이던 '제네시스 캐피탈 글로벌 자산청구권(부실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조달했다. 제네시스 파산 이후 돈을 돌려받지 못한 고팍스도 채권을 보유했었다.
제네시스 부실채권 매각을 주도한 건 이중훈 전 고팍스 대표다. 바이낸스는 2차 상환을 완료하면 최초 고파이 미지급금의 50%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매각액은 채권액면가의 절반 이상 할인된 가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중순은 가상자산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던 시기로 채권가격 상승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고팍스 이사회는 매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매각 대신 바이낸스의 자금 투입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인수가 무산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는 고팍스 이사회에 진입했고 고팍스는 이사회 임원 변동 건으로 규제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를 제출했지만 1년 넘게 수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통상 45일이 걸리는 변경신고 심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실상 바이낸스의 국내 시장 진입을 불허한다는 의미다. 현재는 바이낸스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낮추라는 당국의 요구사항 이행을 앞두고 있다.
우려도 존재했다. 해당 사실은 실명계좌 제휴사인 전북은행도 인지하고 있었다. 고파이 투자자에게 충분한 자금출처 설명이 없다면 추후 반발이 있을 수 있어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빠르게 이뤄졌다. 2차 상환금 출처 설명은 생략됐다.
결정을 내렸던 이중훈 전 대표는 선임 한 달 반 만에 해임됐다. 주주인 바이낸스와의 불화가 주요 이유였다.
◇채권가액 상승에 고파이 투자자 불만…남은 대응책은 신규 투자 유치
시간은 흘러 2024년이 됐다. 매각 당시 할인율이 60~70%에 달했던 제네시스 부실채권 가격이 급등했다. 미국 법원이 제네시스의 파산을 정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제네시스가 보유했던 현금과 가상자산을 대주주가 아닌 채권 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변제안도 승인했다.
법원에서 제네시스 파산에 따라 채권단에게 지급하라고 명한 금액은 30억달러(약 4조원) 수준이다. 제네시스의 자산 대부분은 가상자산으로 이뤄져 있다. 30억달러를 100% 상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기대감이 채권가격에 반영됐다.
가격이 오르면서 우려했던 투자자 반발도 현실이 됐다. 매각 전 충분한 사전고지가 없었던 점이 화근이 됐다. 일부 투자자는 "당시 채권을 매각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상환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나섰다.
매각을 주도했던 경영진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남은 이들이 사태를 수습 중인 상황이다. 조영중 대표는 올해 초 고파이 투자자 간담회를 열어 2차 상환금의 출처를 밝혔다. 채권 가격 상승을 예측할 수 없었고 빠른 자금조달이 필요했던 지난해 배경을 전임 대표를 대신해 설명하고 나섰다.
채권은 이미 가상자산으로 유동화해 2차 상환금 지급에 사용됐다. 엎질러진 물이다. 고팍스와 최대주주 바이낸스는 남은 미지급금 상환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올 초 부채로 잡힌 미지급금을 고팍스 주식으로 출자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투자자 설득이 어려웠다.
남은 방법은 투자 유치다. 바이낸스와 고팍스 모두 하반기 내로 신규 투자를 유치해 자금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주와 구주 인수를 동시해 해줄 제3자가 필요하다. 바이낸스 지분율이 10% 이하로 낮아지게끔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북은행과 재계약 시점인 8월 전까지는 지배구조 변화 가닥이 잡힐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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