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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Theatre]신시컴퍼니 <햄릿>, 죽음학의 깊이를 더하다젊은 열정과 노련함으로 빚은 극적 균형감, 원과 거울로 삶을 비추다

이지혜 기자공개 2024-07-04 10:08:13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2일 16: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햄릿.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냈을 작품이다. 프로듀서, 감독, 작가, 배우를 가리지 않고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을 다시 해석하고 내 손으로 빚어 내 관객 앞에 보이고 싶은 욕망은 욕심이라기보다 야심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 고 이해랑 연출가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햄릿>이 공연된 이래 수십년간 한국의 연극 무대 안팎에서 이 작품을 향한 예술가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불과 두 달 사이에 각각 다른 극단에서 세 편의 <햄릿> 연극이 공연된다.

그런데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유달리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연 당시 전석 매진 신화를 쓴 데 이어 지금도 티켓 판매량이 상당하다. 작품 흥행의 원인을 어떻게 한 가지로만 정의할 수 있으랴. 원작에 충실하되 한국의 정서를 담아내서, 젊은 배우의 힘과 원로 배우의 노련한 연기가 어우러져서, 단순해서 오히려 아름다운 무대가 돋보여서일 수 있다.


◇젊은 힘과 노련함이 주는 긴장감

2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신시컴퍼니가 기획, 제작한 연극 <햄릿>이 6월 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연극장르 총 티켓예매액 기준 3위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1, 2위에 오른 작품 둘다 각각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점을 고려하면 <햄릿>의 선전은 돋보인다. 객석 수가 절반뿐인데도 저력을 보이고 있다.

배우진부터 남다르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20대부터 8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 스탭과 함께했다"고 말했다. 전무송, 이호재, 박정자, 손숙 등 한 시대를 관통한 연기의 대가부터 남명렬, 박지일, 정경순, 길해연 등 중견배우와 강필석, 이승주, 루나 등 젊은 배우가 한 무대에 섰다.


힘의 균형이 쏠릴 법도 하련만 <햄릿>은 극의 초반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오직 햄릿 역을 맡은 배우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혼자서 왕자, 사색가, 연인, 미치광이, 무사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연인 오필리어와 맞수인 레어티즈의 에너지도 만만찮다.

그러나 원로배우와 중견배우들이 젊은 배우들의 힘을 능란하게 받아친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살해 당한 선왕의 분노, 형수를 사랑해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삼촌 클로디어스, 관능과 모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왕비 거트루드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대사가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띈다. 원작 대사는 현대 작품에 비해 만연체가 쓰여 듣는 것은 물론 읽는 것조차 만만찮다. 그런데도 배우들은 먼 옛날 덴마크 왕가의 감정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는 초연부터 지켜진 원칙이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이해랑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시 전무송, 박정자, 손숙 등 평균연령 66세, 연기경력 30년 이상 원로 배우 9명이 뭉치는 전대미문의 캐스팅도 화제였지만 손진책 연출가,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박명성 프로듀서까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가 힘을 합치면서 작품성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28회차 공연 표가 모두 동이 났다.

2022년도에는 원로 배우가 조연과 앙상블로 물러나고 강필석, 박지연 등 젊은 배우가 각각 햄릿과 오필리어로 분하며 새롭게 등장했다. 젊은 배우와 원로 배우가 어우러진 재연도 상당한 호평을 받은 덕분에 2년 만에 세 번째 시즌이 이뤄질 수 있었다.

◇<햄릿>의 의미, 죽음으로 삶을 바라본다

연극 <햄릿>은 무대도 연기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무대가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단출한 이유다. 이는 연기에 충실하겠다는 작품의 콘셉트에 따른 결과다. 초연 당시 무대를 맡았던 디자이너는 <햄릿>의 콘셉트를 놓고 “연기”라고 답하기도 했는데 이런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작품의 의미나 상징성을 놓친 건 아니다. 오히려 세 번째 시즌 <햄릿>은 손진책 연출가와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가 만나 거울과 원, 사각형으로 무대를 꾸며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원과 사각형은 삶과 죽음, 인생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거울은 극중 인물 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 삶, 시대, 세계까지 비추며 모두를 성찰로 이끄는 장치로 작용한다. 손 연출가가 <햄릿>을 가리켜 ‘죽음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맥락이 통한다. 죽음이라는 근원적 질문 그 자체이자 죽음을 질문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 <햄릿>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손 연출가는 무속의 ‘씻김’의 개념을 적용해 한국적인, 그러면서도 원작에 충실한 <햄릿>을 완성했다.

◇장기 공연, 수익성 제고·기부금 확대 '효과'

세 번째 시즌 <햄릿>의 또다른 특이사항으로 극장과 공연기간을 꼽을 수 있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6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공연된다. 공연기간에 석 달에 가깝다. 초연과 재연이 각각 26일, 32일간 1200여석 규모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진행된 점과 비교해 기간은 늘고 규모는 줄었다.


그러나 수익성은 오히려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과 연극 등은 공연기간이 길수록, 횟수가 많을수록 고정비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라서다.

이는 신시컴퍼니가 공연예술산업 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신시컴퍼니는 연극 <햄릿> 수입 일부를 고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맞은 차범석연극재단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창작예술의 기본이 되는 창작희곡의 발굴과 연극인들이 본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개선에 일조하기 위한 의도”라며 “이 취지에 공감했기에 무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명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의 비중을 논하지 않고 모두 이 작품에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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