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the Musical]EMK의 <벤자민 버튼>, 스위트 스폿으로 피어나는 시간의 선율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 초연극, 퍼펫으로 극적 개성 부여
이지혜 기자공개 2024-06-10 08:16:46
이 기사는 2024년 06월 05일 10: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사실 원작이랄 게 없다. 조광화 연출가의 손에서 탄생해 EMK뮤지컬컴퍼니가 무대에 올린 독창적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미국 문학의 거장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이하 벤자민 버튼)>에서 따온 건 주인공 이름과 노인으로 태어나 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진다는 설정 뿐이다. 안타까운 사랑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200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와 겹치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낯설지 않다. 사랑이라는 보편정서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대신 조 연출가는 <벤자민 버튼>에서 사랑이라는 말 대신 '스위트 스폿'이라는 말을 써서 색깔을 부여했다. 스위트 스폿은 최적의 장소, 최적의 시간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생일대의 순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소설 ‘벤자민 버튼’이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 인간의 삶을 관조했다면, 영화 ‘벤자민 버튼’이 사랑의 비극을 그렸다면,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사랑에 헌신해 인생 전반을 스윗스팟으로 만든 남자의 삶을 노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벤자민 버튼>의 완벽한 재해석
극의 막이 오르면 재즈바인 듯 기차역인 듯 오묘하게 꾸며진 무대가 나타난다. 고운 할머니가 된 ‘블루’가 나타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모습의 퍼펫이 등장해 블루의 옆자리를 지킨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이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9살 블루와 벤자민이 만난 건 한 재즈바에서였다. 어린 소녀인 블루와 달리 벤자민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이다. “늙은 몸 안에 갇힌 나”를 슬퍼하는 벤자민을 블루는 다정하게 위로한다. 만남도 잠시, 블루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벤자민을 떠난다.
19살, 이들이 다시 만난 건 그때였다. 중후한 장년의 남성이 된 벤자민과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란 블루. 벤자민은 블루와 함께하며 마침내 “스위트 스폿을 찾았다”. 하지만 블루는 가수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고 혼자 남은 벤자민은 밀주사업으로 큰 돈을 쥐며 뒤에서 묵묵히 블루를 응원한다.
35살, 벤자민과 블루는 사랑을 약속한다. 어느덧 동년배로 보이는 이 둘은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그러나 엄마처럼 본인을 돌봐 준 재즈바의 주인 ‘마마’를 잃고 벤자민은 실의에 빠지고, 그에게 믿음을 잃은 블루는 뉴욕의 무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벤자민은 블루를 놓지 않았다. 전장에서도 잊을 수 없었던 블루. 벤자민은 미국 경제 붕괴로 무대를 잃고 초라한 중년의 여성이 된 블루를 찾아가 결코 그를 떠나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맹세는 이뤄졌다. 블루를 만나고 블루의 품에서 눈을 감는 그 모든 순간이 벤자민에게는 스윗스팟이었다.
◇퍼펫, 극적 메시지 전달과 벤자민을 보여주는 '이중적 장치'
뮤지컬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적 색깔이 스윗스팟으로 드러났다면 극적 개성은 꼭두각시 인형, 퍼펫(puppet)으로 부여됐다. 사실 <벤자민 버튼>을 무대에 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 인물의 전 생애를 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해서다. 연령대마다 다른 배우를 쓴다면 연기적, 시각적 통일성이 무너질 수 있었다.
퍼펫은 이 문제를 해결할 영리한 장치였다. 조 연출가는 프레스 콜에서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모든 연령대를 보여줘야 의미있는 작품이라서 무대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 영국 <워 호스(War Horse)>를 보며 퍼펫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일 수 있겠구나, 퍼펫으로 벤자민의 나이대를 보여주면 공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벤자민의 나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퍼펫은 총 다섯 구다. 소년, 청소년, 장년, 노년 등을 각각 표현하는 이 퍼펫은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다. 이를 만들고자 문수호 작가는 체코에서 질 좋은 나무를 구해서 문양과 결을 살려가며 공들여 퍼펫을 만들었다.
이 퍼펫은 벤자민 역을 맡은 배우가 주로 조종한다. 이들은 벤자민이 청년일 때에는 직접 연기를 하지만 그 외 연령대일 때는 퍼펫을 움직여가며 연기한다. 이는 마치 ‘몸에 갇힌 벤자민의 영혼’을 표현하며 오히려 극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중형극장 작품, 대형작 속 '선방'
뮤지컬 <벤자민 버튼>의 도전적 요소는 퍼펫과 스토리만이 아니다. 극장 규모나 배우 기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가수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으로 불리는 심창민씨가 벤자민으로 분했다. 심창민씨가 뮤지컬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세종문화회관의 M씨어터 무대에 올랐다. M씨어터는 1, 2층에 걸쳐 약 609석의 좌석을 갖춘 중형 극장이다. 창작 작품인 데다 초연작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규모가 큰 무대에 오른 셈이다.
나름의 저력도 과시하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벤자민 버튼>은 좌석 500~1000석 미만 중형극장 가운데 2위에 랭크됐다. 총 티켓예매액 기준으로는 11위를 기록했는데 1000석 이상 대형 작품이 상위권을 차지한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이달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주연인 ‘벤자민 버튼’ 역은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씨가 연기한다. ‘블루’ 역에는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씨가 캐스팅됐다. EMK뮤지컬컴퍼니가 기획과 제작을 맡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투자사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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