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16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래는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더 단단히 쥐려고 할수록 손에 남는 모래는 더 적어진다. 경영권 분쟁에서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상대방을 무너뜨리려는 전략이 오히려 부메랑처럼 돌아와 타격을 준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전략이 보여주는 딜레마 역시 마찬가지다.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라는 고강도 전략을 꺼내든 것은 표면적으로는 주주 환원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승부수다. 그 속에는 양쪽 모두가 패자가 될 수 있는 승자의 저주가 숨어 있다. 자사주 소각이 경영권 싸움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지 한 달여 만에 1라운드가 종료됐다.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의 지분 5% 이상을 추가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과반 의결권 확보라는 최종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최 회장 측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상대편과 달리 자사주 공개매수 전략은 남은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는다. 그 이면에는 더욱 복잡한 의결권 싸움의 그림자가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남은 주주들의 의결권 비율이 상승한다. 하지만 이 의결권 상승은 최 회장 측뿐만 아니라 경쟁자인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에도 적용된다.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지키려는 시도가 반대로 상대방의 힘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다.
그렇다고 MBK파트너스와 영풍 입장에서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재정 악화는 경영권 싸움 이상의 문제다. 자사주 매입을 위해 차입한 금액만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자사주 매입 후 상승하는 부채비율 탓에 향후 밸류업을 위해 필요한 재무 여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현재로서 최 회장 측이 자발적으로 물러나기도 쉽지 않다. 한 차례 가격을 인상하면서 자사주 공개매수를 철회할 수 있는 명분마저 사라졌다. 공개매수 철회는 대항 상황일 때 유효하다는 점에서 선택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카드는 법원의 가처분 판결이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처분 판결에 따라 자사주 공개매수의 중단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처분이 기각될 경우 승자의 저주는 피할 수 없다. 최 회장 측은 자사주 소각으로 경영권을 지키려다 오히려 의결권 싸움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반면 MBK파트너스와 영풍 역시 승리하더라도 막대한 차입금 부담에 시달리며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안개가 걷힌 후 보이는 풍경이 다시금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전장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와 협력의 장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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