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2년 02월 29일 11시0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장의 자율과 정부의 규제, 어떤 게 옳을까. 굳이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제학에 있어서 이 주제는 '클래식' 이다. 시대의 담론에 따라 혹은 사안에 따라 방점이 시장과 자율에 찍히기도 하고, 정부와 규제에 찍히기도 한다.최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스팩(SPAC)의 합병가액 산정을 자율화 한다고 발표했다. 스팩과 합병하는 비상장법인의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스팩과 비상장법인의 협의를 통해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스팩 합병에 대한 당국의 스탠스가 규제에서 자율 쪽으로 옮겨간 듯하다.
물론 당국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완전' 자율화는 아니다. 피합병 법인의 대주주 지분에 대한 보호예수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합병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가격을 공모가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부 자율화다.
어찌됐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초를 칠 생각은 아니지만, 사실 당국의 규제 완화는 늦은 감이 있다. 스팩이 도입된 게 지난 2009년 12월이다. 이듬해 3월 대우증권스팩을 시작으로 우후죽순 20여개가 넘는 스팩이 시장에 선을 보였다. 하지만 22개 스팩 중 지금까지 합병에 성공한 건 달랑 3개뿐(합병 승인 포함 5개)이다.
스팩은 상장 이후 3년 안에 합병하지 못하면 청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아직 1년 여의 시간이 남았다고 하지만 합병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감안하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6개월 이내에 적당한 피인수 기업을 발굴하지 못하면 합병은 불가능하다. 이대로라면 합병 이야기도 못 꺼내보고 청산 절차에 들어가는 스팩이 줄을 이을 판이었다.
당국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업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자본환원율 산정 자율화가 그 방증이다. 당초 5%가 기준이었던 자본환원율을 슬그머니 10%로 올렸다가 다시 풀었다. 스스로 규제의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사실 스팩의 성과가 시원찮은 근본적인 이유는 수요예측 실패에 있다. 스팩은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라는 주식자본시장의 뜨거운 아이템이 결합한 형태다. 도입 초기 투자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의 2~3배를 웃도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스팩의 IPO가 성고하자 당국은 M&A 역시 같은 수요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너도나도 스팩과 합병하겠다고 덤벼들 줄 알았다. 그래서 비상장기업의 미래추정이익을 현재가치로 전환하는 비율인 자본환원률을 10%로 높였다. 합병가액의 과대평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결과는 씁쓸했다. 기업에 대한 가치 평가를 제대로 못 받으면서까지 스팩과 합병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한때 스팩 합병설로 시장을 달궜던 제닉이 IPO를 택한 게 대표적이다. 당국의 잘못된 수요예측이 불필요한 규제를 낳은 셈이다.
스팩은 합병에 실패해 청산 절차를 밟아도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로 돼 있다. 이러한 안전판 때문인지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의결되지 않는 사례도 왕왕 있다. 기업가치가 고평가되면 스팩 주주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청산해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데 굳이 손해를 보면서 합병에 찬성할 이유가 없다.
결국 자본환원율 같은 합병가액 산정에 관한 규제는 불필요했다. 진부하지만 스팩 합병에 있어서만큼은 '보이지 않는 손'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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